LG이노텍 열전 반도체 모습. <사진=LG이노텍>

[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LG가 다시 한 번 반도체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1999년 정부의 ‘재벌 빅딜’로 LG반도체를 현대전자에 매각한 후 LG그룹에게 반도체는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당시 정경유착으로 보고서가 현대에 유리하도록 작성된 탓에 LG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반도체 사업을 현대에 넘기게 된 것이다. 현대전자는 이후 2001년 하이닉스로 사명을 바꾼 뒤 2013년 SK에 매각됐다. 

반도체 웨이퍼 기판 제조기업인 LG실트론(現 SK실트론)이 LG그룹의 반도체 사업에 명맥을 이어왔지만 그마저도 지난해 1월 SK그룹에 매각하면서 사실상 LG그룹은 반도체 사업에서 물러나는 모양새가 됐다. 

LG가 최근 다시 한 번 반도체 사업을 나선다. LG이노텍은 12일 나노 다결정 소재를 적용한 열전 반도체 시장을 공략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구미 공장에 소재 생산라인 구축을 완료했다. 또 LG전자에서는 시스템 반도체 사업을 재편하면서 역량 강화에 나서고 있다.

열전 반도체는 전기를 공급해 냉각·가열 기능을 구현하고 온도 차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혁신 부품이다. 열전 반도체에 전기가 흐르면 한쪽은 발열, 반대쪽은 냉각되는 ‘펠티어 효과’와 양쪽에 온도차를 주면 전력을 발생하는 ‘제벡 효과’를 이용한다.

LG이노텍의 열전 반도체에는 독자 개발한 나노 다결정 소재를 적용했다. 나노 다결정 소재는 10억분의 1미터 수준인 나노미터(nm) 단위의 초미세 결정 구조를 구현했다. 나노 다결정 소재는 단결정 소재 대비 2.5배 이상 강도가 높아 진동으로 소재가 깨지기 쉬운 차량·선박 등에 적용이 가능하다. 

LG이노텍은 열전 반도체 사업으로 5년 뒤 매출 2000억원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권일근 LG이노텍 최고기술책임자(CTO) 전무는 “열전 반도체를 이용한 선박 폐열 발전 사업은 2021~2022년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라며 “자율주행차도 열전 반도체 옵션이 기본으로 적용되면 커질 수 있는 시장”이라고 밝혔다.

열전 반도체가 개발되면 LG전자는 우선 저소음의 특징을 살려 소형 협탁 냉장고에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열전 반도체의 장점이 저소음인 만큼 이를 살려 생활공간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냉장고를 출시한다는게 LG전자의 방침이다. 

지성 LG전자 박사는 “지난해엔 열전소자 냉각 방식을 적용해 기존 컴프레서 냉각방식과 달리 진동의 거의 없는 저소음의 와인셀러를 출시했다”며 “열전 모듈을 가전제품에 적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열전 반도체 외에 LG전자의 디스플레이용 반도체 부품 계열사인 실리콘웍스도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실리콘웍스는 2014년 LG전자가 인수한 기업으로 생산설비가 없는 팹리스 기업으로 반도체 전량을 파운드리에 외주 생산하고 있다. 최대주주는 지분 33.1%를 보유한 ㈜LG다. 

LG전자는 현재 반도체 연구인원 100여명이 대부분 DTV 칩셋의 연구 인력으로 투입돼있거나 디스플레이 주문자생산방식(OEM) 추진에 나서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2012년 DTV용 반도체를 독자 개발에 국제가전박람회(CES)에서 공개한 바 있다. 

또 최근에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용 티콘(T-Con)칩 생산을 실리콘웍스에 양도했다. 양도일은 다음달 1일이며 양도가액은 480억원이다. LG전자는 “반도체 칩 설계 사업 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티콘칩 생산을 실리콘웍스에 양도한 LG전자는 CTO 산하 시스템반도체 연구소에서 가전제품과 스마트폰의 시스템반도체 설계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연합뉴스]

앞서 LG는 반도체용 웨이퍼 제조사인 LG실트론을 보유하고 있었다. LG실트론은 그룹의 반도체 사업 명맥을 이어오던 계열사로 300㎜ 웨이퍼 분야에서 글로벌 4위의 점유율을 기록할 정도로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LG실트론은 지난해 1월 SK하이닉스에 지분 51%를 6200억원에 매각했다. 반도체 사업에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간 SK하이닉스는 LG실트론을 인수하면서 반도체 전 사업의 수직 계열화를 완성했다. 

LG그룹에게 반도체는 뼈아픈 부분이다. 90년대 LG반도체는 세계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 4위, D램 6위에 이를 정도로 큰 글로벌 기업이었다. 

하지만 1999년 김대중 정부의 재벌 빅딜로 LG반도체는 현대전자에 매각된다. 재계 일각에서는 당시 대북 정책에 협조적이었던 현대에 정부에서 특혜를 준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현대는 LG가 보유한 LG반도체의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 59.98%를 2조5600억원에 인수했다. 이 중 1조5600억원은 현금과 데이콤 지분으로 지급하고 나머지 1조원은 1년 거치 2년 분할 상황하기로 했다. LG는 이를 바탕으로 2000년 데이콤을 인수했지만 사업 정상화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산업 환경의 변화를 예측하긴 어렵지만 LG가 반도체 사업을 계속 이어갔다면 그룹 전체의 실적에도 변화가 있었을 수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반도체 ‘슈퍼사이클’(장기호황)에 LG도 덕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LG반도체가 유지됐다면 오늘날 SK하이닉스와 LG유플러스는 탄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SK하이닉스는 현대전자와 LG반도체가 합병한 하이닉스가 전신이었으며 LG유플러스는 LG텔레콤과 LG데이콤, LG파워콤이 통합해 출범한 회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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