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으로 빠르고 정확한 시공 능력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해온 국내 수주산업이 위기에 봉착했다. 사진은 대우건설이 건설 중인 아프리카 파푸아뉴기지 LNG 공사 현장 전경.

[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직접 고용인원이 160만명에 이르는 건설업 등 수주산업의 특수성이 배제된 근로시간 단축 시행이 임박하면서 현장의 우려와 혼란이 커지고 있다.

8일 주당 52시간 이하를 강제한 근로기준법 적용을 3주 앞두고, 국내 건설사들이 유연·탄력근무제 검토 등 연착륙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산업측면에서의 경쟁력 하락은 불가피해 보인다.

건설업계가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것은 주당 52시간읕 매주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닌 격 주간으로 평균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맞추는 방법이다.

국내 건설사 가운데 GS건설은 지난 5일부터 자체 개발 근로시간관리시스템을 현장에 적용시키며 선제 대응에 나섰다.

GS건설은 공사 현장의 기본 근로시간은 주 48시간(주 6일, 국내 현장은 격주 6일)로 규정하고, 연장근로는 주당 52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전 신청과 승인을 통해 가능케 했다.

현대건설, 롯데건설, 대림건설 등 다른 회사들도 시뮬레이션을 돌리면서 이달 중 적용을 서두른다는 계획이다.

그럼에도 현장 상황이 워낙 복잡해 '탄력적 근로시간 단위기간'을 월·분기·년 또는 공사기간으로 확대하지 않으면 당장의 공사 관리도 어렵다는 것이 건설사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이에 장신철 일자리위원회 부단장도 최근 건설협회가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탄력적 근로시간 단위기간 확대'에 긍정적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노조와의 합의점을 찾아 와야 한다는 것”이 전제 조건을 내세웠다.

국토교통부 역시 후폭풍을 가라앉히기 위해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서 개정안'을 내놨다. 건설사가 발주자에게 공사 기간 연장이나 비용 조정을 요구할 수 있는 방안이지만 "국내 발주되는 공사에 한정되는 것인데다, 발주자의 부담만 키우는 정책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건설업계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와 표준도급계약서 개정안이 적용이 되더라도 현재 진행 중에 있는 대부분의 공사 계약이 68시간으로 기준으로 맞춰져 있어 손실을 물론이고 미래 산업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건설업체의 평균 근로시간은 주당 67시간이다. 평일 근무 40시간, 평일 연장근무 12시간, 휴일근무 16시간을 더해 68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한 구법에 따른 것. 현재 진행되는 공사를 주당 52시간에 맞추게 되면 공사기간이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중견건설사 한 관계자는 "10개월이 걸리던 공사 기간이 13개월이 된다. 산술적으로만 따져도 공사 기간은 최소 1.3배가 늘어나게 된다"며 "또 작업 중단 빈도가 높아지면서 공사 효율성도 떨어지게 되면 신뢰도 추락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고 우려했다.

이 같은 경쟁력 하락의 직접적 타격을 입는 곳은 산업현장이다. 국내 수주의 경우 3~4년에 걸리는 공사에서 남기는 이익이 많아봐야 6% 남짓인데 이를 연으로 환산하면 한해 1%의 수익을 남기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해외건설업계 한 관계자도 "국내 물량 부진으로 건설사들이 해외건설에서 탈출구를 찾으려는 과정에 찬물을 끼얹었다"며 "프랑스 등 선진국의 기술력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한국 건설사를 비싼 돈 주고 일을 맡길 사업자가 어디 있겠느냐"며 토로했다.

재고·생산관리가 가능한 제조업과는 다르게 수주산업의 생명은 고객과의 신뢰에 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한국의 조선업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배를 생산하며 선주와 약속한 공기를 정확히 맞춰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선박 인도 직전에 수행되는 해상시운전은 고도의 기술과 해상에서의 6개월 이상의 근무가 필요하기 때문에 법정근로시간 외 연장근로가 불가피하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도 지난 4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정부에서 대책을 마련해 주지 않는 이상 알면서도 법 위반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처럼 해외수주 산업뿐만 아니라 국내 수주산업의 불황도 장기화되고 있다. 5월 전문건설업 경기실사지수(BSI)는 4월(83.4)보다 낮은 79.7로 나타났으며, 6월도 이달과 수준이 유사한 80.2로 전망되며 기준치 100 이하를 3년이 넘게 연속 밑돌고 있다.

※ 여러분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소비자 고발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메일 : webmaster@enewstoday.co.kr

카카오톡 : @이뉴스투데이

저작권자 © 이뉴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