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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칼럼] KDI의 충언? 대통령의 항룡간은 없었다

처음엔 그가 ‘항룡간’을 잡기라도 한 줄 알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최경수 선임연구위원을 두고 하는 얘기다. 

그는 지난 4일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거의 모든 언론은 이 보고서의 내용에 대해 ‘KDI,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론 제기’라는 요지로 보도했다.

과거에도 국책 연구기관이 정부 정책에 비판적 보고서를 내놓는 사례는 종종 있었다. 특히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도 반골 기질의 ‘요주의 연구원’들이 정부 입맛에 안 맞는 보고서를 내놓아 파문을 일으키곤 했다. 지금 바른미래당을 이끌고 있는 유승민 대표도 그 시절 요주의 연구원 중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번은 경우가 좀 다르게 느껴졌다. 대통령의 핵심 공약에 제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니 임팩트가 보다 크게 다가왔다.

항룡간을 떠올린 것은 그래서다. 항룡간은 중국 영화 ‘적인걸-측천무후의 비밀’에 등장하는 무기다. 영화에서 주인공 적인걸은 선황(고종)에게서 이 무기를 하사받은 것으로 나온다. 항룡간은 무기로도 쓰이지만 더 중요한 용도는 따로 있다. 이 항룡간을 들고 황제 앞에 서면 어떤 직언도 아뢸 수 있는 것이다. 일종의 면책특권인 셈이다.

기자의 눈에 이번 최 연구원의 보고서는 마치 영화 속 설정처럼 ‘항룡간 충언’으로 비쳐졌다.

그러나 웬걸. 반나절도 안 돼 그 생각은 착각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 연구원이 CBS방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다른 언론에 보도된 내용과는 정반대의 취지로 연구결과를 설명한 것이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언론이 부각시켜 보도한 고용감소 전망치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일자리 안정자금 등의 충격완화책을 감안하지 않은 최악의 시나리오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따라서 이들 요인을 감안하면 실제 고용감소 효과는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는 또 언론들이 보고서 내용을 자신의 취지와 다르게 보도했다는 불만도 표했다. CBS앵커가 “다수의 언론은 8만 명, 14만 명이 해고된다고 보도했다”고 지적하자 “그렇게 보도하기 때문에 사실 많이 부담스럽다. 언론 헤드라인에 금년도 8만 명 고용 감소한다고 뽑았더라. 그렇게 쓰면 세상 사람들이 내 말을 아무도 안 믿을 것이다”라고 하소연한 것.

이 인터뷰를 근거로 CBS는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등을 병행하면 ‘2020년 1만원 인상’ 공약을 이행하더라도 고용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결론”이라며 “일각에서 펴온 ‘속도조절론’도 설득력을 잃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같은 연구보고서를 두고 정반대의 두 가지 해석이 나온 것이다.

이 해프닝을 지켜보며 두 가지 면에서 입맛이 씁쓸했다. 첫째는 최 연구원의 해명대로라면 이 연구보고서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보고서였는가라는 점이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일자리 안정자금 등은 이 보고서를 공개할 시점에 이미 결정된 변수였다. 따라서 이 변수들을 감안하지 않고 산출한 고용감소 전망치는 의미 없는 수치가 된 상태였다.

최 연구원은 차라리 “고용감소 없이 공약을 이행하려면 어떤 조치들이 필요한가?”라는 쪽으로 연구의 초점을 옮겼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랬다면 정책적으로 훨씬 더 유의미한 연구로 평가됐을 것이다.

또 하나 씁쓸한 것은 “현실 세계에 항룡간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점이었다. 사실 최저임금 인상공약은 이 정권의 역린이 될 수도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정부가 기대하는 ‘소득주도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경제정책 ‘실험’의 대실패로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책연구소 연구원 입장에서 이 공약에 시비를 거는 것은 역린을 건드리는 것일 수도 있다. 잠시나마 항룡간 이미지를 떠올린 것도 그래서다.

결국 그 이미지는 기자의 과도한 낭만적 상상이 그려낸 허상임을 확인했다. 어쩌면 문재인 대통령에겐 항룡간을 하사할 생각조차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설사 항룡간을 내린다 한들 요즘처럼 ‘80%대 지지율’을 누리는 대통령의 공약에 딴죽을 걸기가 쉬운 일이겠는가.

<사족> 최 연구원의 해명대로라면 거의 모든 언론들, 심지어 한겨레신문 등 진보매체들도 그의 취지를 왜곡해 보도한 셈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브리핑 현장에 없었던 사람들은 보고서 내용을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KDI보고서는 전체 내용 중에도 핵심 내용을 맨 앞에 발췌문으로 뽑아 편집한다. 그 발췌문은 ‘…내년과 내후년에도 대폭 인상이 반복되면…임금질서가 교란되어 득보다 실이 클 수 있으므로 인상속도를 조절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적시하고 있었다.

임혁  lim54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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