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에 자리한 미국내 최대은행인 JP모건체이스 본사 건물[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유제원 기자]일정 수준의 의결권을 확보하고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입김을 행사하는 세계 행동주의 투자펀드들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인수·합병(M&A) 등 주요 계획을 변경·무산시키거나 고액 연봉으로 비판받는 최고경영자(CEO) 보수를 삭감하는 등 기업 경영에서 실제 변화를 일으킨 사례도 상당수다.

미국 주요 기업들을 겨냥했던 이런 투자자들은 이제 아시아로 눈을 돌려 '사냥'에 나서고 있다.

이런 펀드들은 의결권을 일정 부분 확보해 주주총회 의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아예 이사회에 직접 진입하는 방식, 시장 여론을 조성하는 방식 등으로 기업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미 세워진 전략이나 계획을 바꾸도록 압박을 가한다.

30일 JP모건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기업들을 겨냥해 벌인 이런 조직적인 활동은 총 662건으로 집계돼 6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었다.

이들의 요구가 관철되는지는 사안마다 다르지만, 큰 변화도 상당수 일어났다.

일본 후지필름은 미국 제록스 인수 결정을 내렸으나 제록스 대주주인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컨이 "회사 가치를 저평가했다"는 이유로 제동을 걸자 결국 이달 중순 합병이 무산됐다.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안을 철회, 조정하기로 한 배경에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을 시작으로 한 적극적인 반대 운동이 있었다. 그룹 계열사 지분을 일부 확보한 엘리엇의 반대 선언에 이어 의결권 자문사인 ISS·글래스 루이스의 반대 권고가 잇따랐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21일 "주주와 투자자 및 시장에서 제기한 다양한 견해와 고언을 겸허한 마음으로 검토해 충분히 반영토록 하겠다"고 말해 시장의 반대 움직임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했다.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 본사[연합뉴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에 등록된 외국인 집합투자기구(펀드)는 4월 말 기준 2만1328개에 달한다.

이는 국내 증시에 투자하는 외국인 기관 투자자(3만4208곳)의 62.3%에 달하는 수준이다. 펀드 다음으로는 연기금(2250개), 증권사(976개), 은행(721개), 보험사(503개) 등 순으로 많다.

국내 주식을 직접 사고파는 외국인 개인 투자자도 1만1200명 수준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엘리엇 같은 펀드뿐만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증시에 투자하려면 국내 투자자와 마찬가지로 계좌를 개설해야 하고 이를 위해 금감원에 등록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투자자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펀드는 증가세도 가파른 편이었다.

펀드는 2008년 3월 말 1만 개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었지만 10년간 112.7%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다른 외국인 기관투자자는 증권사가 70.9% 늘었고 보험회사(48.8%), 연기금(43.9%), 은행(31.3%) 등 순이었다. 외국인 개인 투자자도 61.6% 늘어나는 데 그쳐 외국인 펀드의 증가세에 훨씬 못 미쳤다.

국적별로 보면 개인과 기관을 통틀어 가장 많이 등록한 외국인 투자자는, 엘리엇이 속한 미국이다.

미국인 투자자는 3월 말 현재 1만5061명으로 전체의 33.2%를 차지했고 일본(3972명), 영국(2657명), 캐나다(2649명), 룩셈부르크(2001명), 아일랜드(1358명)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미국인 투자자가 보유한 국내 주식 보유 비중도 당연히 가장 컸다.

3월 말 기준 외국인이 보유한 국내 상장주식 625조1510억원 중 미국인 투자자는 41.4%인 259조140억원어치를 갖고 있다. 이는 두번째로 비중이 높은 영국(47조7270억원)의 7.6%와도 격차가 큰 수준이다.

이처럼 국내 증시에서 미국인 투자자, 그 중에서도 막대한 자금을 자랑하는 펀드의 영향력은 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엘리엇이 지난달 초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3개사의 보통주를 1조500억원어치 보유한 사실을 공개하고서 현대차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반대하고 나서자 국내 증시에는 적잖은 파문이 일었다.

외국인 펀드가 2만개를 넘는 만큼 이번 엘리엇의 반대 같은 일이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불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JP모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상위 5개 그룹이 증시 시가총액의 60%를 차지할 만큼 집중적인 시장 구조가 이들 기업의 의사결정권을 높여주고 있다"면서 "이런 점 때문에 한국에서는 해당 기업 부문이 변화에 반대할 경우 개혁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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