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에 대한 외국 자본의 공세가 반복되고 있다. 이에 업계는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유영준 기자] 외국계 자본 공세가 연일 거세지며 국내 경제와 기업의 경영 주권이 흔들리는 모양새다. 삼성, 현대차에 대한 엘리엇의 공세를 비롯해 지난 20년간 외국 자본의 압박이 끊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무리한 공세에 맞서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은 최근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밝혔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순환출자 해소를 위한 첫 단계로 현대모비스의 모듈 및 AS 사업부문을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한다는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지난 2015년에도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7.12%를 확보하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하고 나섰다.

국내 기업에 대한 외국 자본의 공세는 지난 1999년 이후 반복되고 있다.

1999년 SK텔레콤은 다른 외국계 4개 펀드와 연합해 자사 지분을 6.6% 사들인 미국계 혜지펀드 타이어펀드로부터 경영진 교체를 요구받았다. 이후 타이어펀드는 SK 계열사에 보유 지분 전량을 매각해 약 6300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두고 한국을 떠났다.

2003년에는 영국계 소버린자산운용이 SK 지분을 14.99%를 매수하고 자산 매각과 경영진 퇴진 등을 요구했다. 결국 경영권 장악엔 실패했지만 외국계 투자자에게 보유한 지분을 전부 매각해 약 9400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긴 후 물러났다.

2004년에는 삼성물산이 표적이 됐다. 영국계 헤지펀드 헤르메스는 삼성물산 주식 5%를 사들인 후 우선주 소각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후 경영권 분쟁으로 주가가 급등한 틈을 타 보유지분을 전량 매각해 300억원대의 차익을 거둬들였다.

KT&G 도 2005년 칼 아이칸의 압박을 받았다. KT&G의 지분 6.59%를 보유한 칼 아이칸은 주가 상승을 노린 자회사 매각을 요구해 배당금 포함 약 1500억원의 시세 차익을 챙겼다.

전문가들은 외국계 자본이 잇달아 국내 기업을 흔드는 이유에 대해 잘 되면 경영권 장악, 못 돼도 주가 변동을 통한 시세 차익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마디로 ‘밑져도 본전을 넘는다’는 것이다.

정부의 무리한 개혁 요구가 빌미를 제공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 김용태 위원장은 “현대차가 지배구조 개선을 서두르다 엘리엇에게 공격 기회를 줬다”며 “결국 정권의 무리한 개혁 압박이 화를 자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기업은 경영 주권이 흔들리고 있다며 아우성이다. 지배구조 개편 등 국내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현안들에 외국 자본의 개입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에 비해 짧은 기간에 몸집을 불린 국내 기업들은 성장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을 대부분 주식발행으로 조달했다. 이에 미국이나 일본처럼 차등의결권 등의 경영안전장치가 전무하다.

최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엘리엇의 요구에 대해 “금산분리법을 고려하지 않은 제안”이며 “부당하다”고 지적한 바 있지만 여전히 국내 기업 환경은 외국 자본에 취약한 구조로 나아가고 있다.

법무부는 다중대표소송제, 전자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이 포함된 상법개정안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최근 의결권 행사 지침을 개정해 집중투표제에 찬성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이르면 올해 말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도 앞두고 있다.

업계는 외국자본의 공세 대응을 위한 정부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상장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는 16일 공동 호소문을 내고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필 등 세계 주요국에서 보편화된 경영권 방어 수단을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차등의결권은 주로 창업자나 최대주주 등의 지분에 일반 주식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포이즌 필은 신주 발행 시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다. 국내에서는 대주주 권한 남용과 소수 주주 권익 침해 논란 등으로 도입이 미뤄져 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지나치게 단기 수익만을 노리는 외국계 자본의 공세가 이어지는 상황”이라며 “적극적인 대응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국내 기업이 오히려 외국 자본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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