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은지 기자]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향년 73세로 별세했다. 구 회장은 지난해 뇌종양을 발견하고 수술과 치료에 전념해왔지만 최근 병세가 악화돼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구 회장은 1년간 투병을 하며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에 따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20일 오전 9시52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영면에 들었다. 장례는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르기를 원했던 고인의 유지와 유족들의 뜻에 따라 비공개 가족장으로 진행한다. 

구 회장은 LG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맏손자이자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4남2녀 중 첫째로 1945년 경남 진주시 지수면에서 태어났다.

구 회장은 1975년 럭키(현 LG화학) 심사과 과장으로 입사하여 첫 근무를 시작했고 이후 영업, 심사, 수출, 기획 업무 등을 거치면서 20여 년간 차곡차곡 실무경험을 쌓았다.

구 회장은 1995년 2월 22일, 그의 나이 50세에 부친인 구 명예회장이 경영일선에서 은퇴하며 LG의 제 3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구 회장은 매출액을 회장 취임 당시 30조원 규모(1994년 말)에서 GS, LS 등을 계열분리하고도 160조원 규모(2017년 말)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다섯 배 이상 성장시켰다. 이 가운데 해외매출은 10조원에서 110조원대로 열 배 이상 비약적으로 신장시켰다.

국내외에서 근무하고 있는 임직원 수도 같은 기간 약 10만 명에서 약 21만 명으로 2배 가량 늘어났다. 이 중 약 8만여 명이 200여 개의 해외 현지 법인과 70여 개의 해외 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구 회장은 LG 사업군을 ‘전자-화학-통신서비스’ 3개 핵심 사업군으로 구축해 경쟁력을 높이며 LG를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이끌었고, 국가 산업 경쟁력의 견인과 경제 발전에도 기여했다.

특히 구 회장은 ‘영속기업 LG’의 해답은 R&D와 인재라는 신념과 의지로 서울 마곡지구에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인 ‘LG 사이언스파크’를 완성시키는 등 아낌없는 투자와 육성에 열과 성을 기울였다.

또 ‘럭키금성’에서 ‘LG’로 CI 변경을 주도하며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 도약하는 기반을 다졌으며, 선진적 지배구조 구축에 대한 강한 의지로 국내 대기업 최초로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고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결단하는 등 영속할 수 있는 기업의 토대를 쌓았다.

구 회장은 사업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엄격한 승부사였지만, 평소에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에서 우러나오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희생한 평범한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함께 기억하자는 뜻으로 ‘LG 의인상’을 만들어 남다른 사회공헌 철학도 실천했다. 후대에게 의미 있는 자연유산을 남기고 싶다는 의지로 자신의 아호를 딴 수목원 화담(和談)숲을 조성하기도 했다.

재계에서 구 회장은 대기업 총수이지만 이웃집 아저씨 같은 소탈한 인물로 평가 받았다. 주요 행사에 참석하거나 해외 출장 시에도 비서 한 명 정도만 수행토록 했고, 주말에 지인 경조사에 갈 경우에는 비서 없이 홀로 가는 경우도 많았다. 

구 회장은 재벌 총수 같지 않게 매우 소탈하고 검소한 면모를 지녀 구 회장을 처음 만난 사람은 대부분 놀라기도 했다. 일례로 구 회장이 부장 시절 해외출장을 함께 간 기업인사가 나중에 귀국해서야 동행한 구 회장이 그룹 회장의 맏아들임을 알고 놀랐다는 사실이 전해질 정도였다.

구 회장의 타계로 재계 4위 LG그룹은 고인의 장남인 구광모 LG전자 상무 체제로 개편된다. LG그룹은 지난 17일 이사회를 열고 구 상무를 지주회사인 LG 등기임원으로 추천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구 상무는 다음달 29일 임시 주주총회를 거쳐 사내이사로 선임될 예정으로 그룹 총수 역할에 걸맞는 승진 인사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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