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양남면에 위치한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에 있는 건식저장시설 캐니스터. 경수로형 원자력발전소에서 핵분열 이후 연소된 사용후 핵연료는 수조에 담아두는 습식저장을 통해 열을 식힌 뒤 건식저장시설로 옮겨져 보관된다.

[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사용후 핵연료(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라는 최대 복병을 만났다.

정부는 공론화를 거쳐 기존 정책을 재검토한다는 입장이지만 저장시설을 추가로 만들지 않으면 사용후 핵연료가 거리로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

15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원자력업계에 따르면 중수로인 경주 월성 원자력발전소는 2019년, 경수로인 영광 한빛 원전은 2024년에 사용후 핵연료가 포화 상태가 될 예정이다.

고리 원전 1, 2, 3호기 저장시설 대비 사용후 핵연료 누적 현황은 각각 86%, 84%, 91%다. 새한울 원전 누적현황은 1호기가 98%, 2호기는 90%, 3호기와 4호기는 각각 86%와 84% 수준이다.

이 가운데 월성 원전은 다음달부터 임시저장시설 공사에 돌입해야 사용후 핵연료를 제 때 보관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재검토를 추진하면서 '살엄음 판 걷기'와 같은 정책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최근 탈원전으로 월성 1호기가 멈춰선 만큼 '포화 시점'도 연장됐을 것이라는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막 재검토를 시작한 단계에서 기존 계획을 섣불리 뒤엎었다는 목소리가 크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월성 원전은 현재 가동하는 발전소가 3개에서 2개로 줄었기 때문에 포화시점은 연장될 것으로 보인다"며 "조달청에 연장시점과 관련한 연구 용역을 발주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현재로선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최소 2020년 말로 미뤄질 것 같다"며 "기타 향후 계획은 최근 출범한 재검토 준비단에서 다룰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정부는 11일 기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안을 재검토하기 위해 정부추천 4인, 원전소재지역 5명, 시민·환경계 3명, 원자력 전문가 3명 등 총 15인으로 구성된 준비단을 발족했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준비단일 뿐이어서 향후 4개월 동안 준비 과정을 거쳐야 재검토위원회가 출범할 수 있다. 재검토위원회에서 수정된 계획이 확정되더라도 저장시설 추가 증설을 위해서는 원자력안전위원회 승인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모든 절차를 거치면 추가 증설이 2년은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제8차 전력수급계획으로 월성 1호기 가동이 중단됐다. 이는 원자력발전시민연대가 지난 2월 제기한 행정 취소 소송에 따른 것이어서 정부가 주장해온 폐쇄와는 현실적으로 차이가 있다.

월성 원전 안에는 원통형 저장시설 캐니스터 300기와 콘크리트 조밀건식 저장시설인 맥스터 7기가 있다. 추가로 맥스터 7기를 더 짓겠다는 게 애초 계획이다. 맥스터 하나에 사용후 핵연료 16만8000다발을 저장할 수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49만9632다발의 사용후 핵연료 임시저장용량 가운데 43만6112다발을 저장한 상태다. 지난해 말 기준 저장률은 87.3%다.

한수원은 2016년 4월 산업부와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사용후 핵연료 16만8000다발을 저장할 수 있는 맥스터 신설을 골자로 하는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 운영변경 허가'를 신청했지만 공론화 과정에서 환경단체들이 탈퇴하면서 허가가 보류됐다.

월성원전 인접 지역인 양남면 주민들이 지난달 25일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추가건설을 반대하며 대규모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여기에 지난 대선에서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 방안 재공론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최근 재검토 준비단을 출범시켰으나 인접 지역 주민들은 추가건설을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어 진척이 어려운 상황이다.

경북 경주시 양남면 주민들은 최근 월성원전 안에 사용후 핵연료 임시저장시설 추가건설을 반대하는 대규모 항의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임시저장 시설 건설 반대를 비롯해 원전 안에 보관 중인 사용후 핵연료의 근본적 해결을 촉구했다.

하지만 2035년 중간저장시설, 2053년 영구처분 시설을 가동해야 국내에서 발생하는 사용후 핵연료를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도 최소 15년 이상은 원전 내 임시시설에 사용후 핵연료를 저장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임시저장 기법은 별도 중간저장시설 등을 마련하기 전까지 부지 안 저장시설 용량을 확충하거나 저장능력 포화시점을 지연시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원자력업계에서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한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H교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났을 당시 편서풍으로 방사선 직접피해가 없다는 과학적 분석이 발표됐음에도 한국의 9시 뉴스가 방사선 비가 몇 년간 내릴 것"이라고 방송한 사례를 들었다. 이 교수는 이어 "일본은 큰 사고를 겪은 뒤 에너지 중요성을 알고 원전을 30기로 늘리기로 한 반면 한국은 정반대"라며 "집단 이기주의로 에너지가 모두 사라졌을 때 책임은 국민 모두가 짊어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핵연료를 사용하고 나면 사용후 핵연료가 남는데 강한 방사선과 높은 열을 방출하기 때문에 생명체와 완전 격리가 필요하다. 사용후 핵연료는 반감기가 수십 년~수만 년 이상인 알파선을 방출하는 핵종으로 방사능 농도가 1그램당 4000베크렐(Bp/g) 이상이며 열 발생률이 세제곱미터당 2킬로와트(kW/㎥)에 달한다.

반면에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은 원자력 발전소 등에서 사용한 작업복·장갑·부품 등 방사능 함유량이 고준위보다 적어 반감기가 몇 시간에서 몇 년인 폐기물이다. 국내에는 경주 방폐장이 유일한 처리 시설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 내 파이로프로세싱 기술 실험시설. <사진 제공=한국원자력연구원>

해외 주요국가 방폐물 영구처분시설 목표 운영 시기를 보면 핀란드 2020년대, 프랑스 2025년, 스웨덴 2030년 초, 독일 2040년, 미국 2048년으로 대체적으로 한국보다 시점이 빠르다. 동시에 최근에는 고준위를 중저준위로 변환하는 기술 개발도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벨기에 원자력연구원 소속 니어데일 박사는 사용후 핵연료 재활용 및 최종폐기물 최소화를 위한 첨단기술인 '가속기구동 핵변환기술'을 개발했다.

또 한국과 미국 유타주립대 심슨 교수가 공동으로 개발해 온 파이로프로세싱은 사용후 핵연료를 소듐 등으로 태워서 중저준위로 전환하는 중요한 기술로 꼽힌다. 하지만 이 같은 위험을 최소화하는 기술이 있음에도 사회적 합의 도출은 매번 실패로 끝났다.
 
황일순 서울대 핵공학과 교수는 "미래 세대까지 안전한 사용후 핵연료 처분 시스템 개발 문제는 더 이상 전망이 아닌 실용화가 가능한 기술적 대책"이라며 "우리나라도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한 기술 개발을 통해 사용후 핵연료의 안전한 처분에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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