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서 백운규 장관은 “2022년까지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정부는 불과 6개월 만에 산업용 누진제 도입을 골자로 한 전기료 인상을 예고하는 듯 한 행보를 보이고 있어 업계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사진은 작년 10월 13일 산업부 국정감사에 참석해 증인선서를 하는 백 장관. <자료출처=산업통상자원부 홈페이지>

[이뉴스투데이 유준상 기자] “2022년까지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

지난해 10월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서 백운규 장관은 “신재생에너지 설비 관련 가격의 급격한 감소세를 고려하면 탈원전 정책이 전기요금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면서 이와 같이 못 박았다.

탈원전-신재생을 골자로 한 ‘에너지전환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는 전기료 인상 우려에 대해 줄곧 일축시켜왔다. 지난해 12월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도 “원전과 석탄발전 등 저렴한 기저발전으로 공급받던 전력분을 신재생에너지 공급 가격을 절감시켜 충당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췄다.

하지만 불과 4개월 만에 ‘전기료 인상’을 예고하는 듯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18일 산업부에 따르면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2019~2040년) 수립을 위해 민관 위원으로 구성된 워킹그룹은 최근 산업용 전기료 개편 관련해 검토에 착수했다.

이날 워킹그룹의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에너지 수급 상황을 볼 때 전기요금과 관련해 세재 개편이나 산업용 누진제 도입 필요성에 공감하고 이 주제로 심도 있게 토의해야 한다고 워킹그룹 내부적으로 중지가 모였다”면서 “다만 필요성만 제기됐고 내용이나 방법론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추후 논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에너지업계 종사자들은 정책 실무자의 이 같은 발언이 ‘전기요금 인상’을 시사한 것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한 인쇄기 제조업체 종사자는 “공장 설비를 매일 돌리려면 전기 수급이 상당량 필요한데 누진제 도입이라는 말을 듣고 덜컥 겁이 났다”며 “안 그래도 IT산업의 발달로 인쇄업계가 위기에 처한 상황인데 전기요금마저 인상되면 파산하는 사업자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정부가 세운 에너지계획의 부실성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꼴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한 전력업계 관계자는 “전기요금이 정치적 구호나 수단으로 쓰이기 때문에 ‘전기료 인상이 없다’는 발언을 지킬 수 없음을 예감하고 있었지만 이번엔 빨라도 너무 빨리 찾아온 것 같다”며 “탈원전과 탈석탄, 재생에너지 확대로 요약되는 정부의 에너지 전환정책의 부실성을 드러내는 지표이자 벌써부터 전력수급계획이 위기 국면을 맞이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한국전력공사가 주거용 전기요금에 관한 입장을 번복한 정황은 산업용 전기 누진제 도입의 단초가 됐다는 해석도 있다.

한전은 지난 12월 다가구·다세대주택 전기요금 인상을 골자로 한 ‘주택용 전기요금 적용기준’을 개정했지만 보도자료 한 건 내지 않고 해당 주택 거주자에게만 통지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17일 오전 한 언론사가 이를 보도하며 알려지자 그로부터 4시간도 채 되지 않아 ‘다가구ㆍ다세대 주택 공동설비 일반용 전기요금 적용 시행을 유보키로 했다’며 입장을 번복했다. 
 
한전 관계자는 기준 개정에 대해 “2016년 12월 주택용 누진제 완화에 따라 주거용에 필수 사용량 4000원을 공제시켰으나 공동주택의 공용부분까지 적용받는 것은 문제가 있어 이를 정상화하자는 취지였다”면서 “하지만 주로 저소득층 가구가 몰려있는 다가구ㆍ다세대 주택 고객의 전기요금 부담이 다소 증가할 수 있어 시행을 유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산업부가 주거용 전기요금 인상을 유보했으나 결국 전기요금제도 개편을 산업용에 집중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냐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로 산업용은 한전 판매 전력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조금만 인상돼도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다. 한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전력판매량 중 산업용의 비중은 56.3%다. 일반용은 21.9%, 주택용은 13.5%를 차지한다.

최근 정부가 산업용 전기 중심으로 전기요금제도 개편에 나서려는 조짐이 보여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전 판매 전력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는 인상 폭이 조금만 상승해도 수월하게 재정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적자난에 시달리고 있는 전력당국이 '회심의 카드'로 이용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자료는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발표한 용도별 전력소비량 비중 추이. <자료제공=한국전력>

산업부의 ‘말바꾸기’ 행보가 현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 정부 집권 전부터 에너지 전문가들은 탈원전, 탈석탄,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골자로 한 에너지 전환정책은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예견해왔다. 제8차 에너지수급기본계획 수립에 원자력, 석탄 등 에너지 분야 전문가들이 배제되면서 전문성이 결여됐다는 세간의 지적도 받아왔다.

업계는 정부가 이를 귀담아듣지 않고 전문성이 절실한 에너지 정책을 정치적 이념 논리만을 잣대로 삼아 수립, 현실성이 떨어지면서 지금 후폭풍을 맞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한 전력업계 전문가는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할 시점 정부는 전기료 인상이 없을 것이라고 공표했다가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앞두고는 인상 추진에 나서고 있다. 주목할 점은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은 모든 에너지 정책을 포괄한 최상위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라는 점이다. 워킹그룹이 추진하는 산업용 누진제가 올해 말 수립되는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포함될 경우 이를 제지할 방도는 없다. 결국 국민들이 직격탄을 맞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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