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 사장인 김대철 주택협회 회장(오른쪽). 지난달 21일 주택협회장에 취임한 김 회장은 정부가 추진 중인 후분양제와 관련, "우량, 비우량회사간 자금조달 능력에 차이가 커 공급이 줄어들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주택협회는 하더라도 단계적으로 하는 게 좋다는 입장"이라고 언급했다.

[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주택 건설업계를 대표하는 수장이 '단계적 후분양제'에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건설사들의 속앓이가 깊어지고 있다.

16일 건설업계에선 HDC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인 김대철 한국주택협회장이 정부가 추진 중인 후분양제 도입을 '단계적으로 받아들이겠다'과 발언한 것에 대해 '섣부른 언급'이라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김 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를 통해 "후분양제로 인해 우량, 비우량회사간 자금조달 능력에 차이가 커 공급이 줄어들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주택협회는 후분양제를 하더라도 단계적으로 하는 게 좋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후분양제 도입에 조심스러운 입장이지만 건설업을 대표하는 주택협회장이 민간·공공 구분 없이 수용의 뜻을 표시한 것으로 논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후분양제란 소비자로부터 미리 분양대금을 받아 공사비를 조달하는 선분양과는 달리 아파트를 일정 단계 이상 짓고 분양자를 모집하는 방식으로 찬반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우선 반대측은 건설사가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해야 하기 때문에 중소·중견 건설사는 사업을 추진하기 어렵게 된다고 지적한다. 또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최근 용역보고서에 의하면 후분양 도입시 주택 공급은 전국적으로 연평균 8만6000~13만5000가구가 줄어들게 된다.

반면 국토교통부와 정치권에서는 완공 후 분양가가 정해지기 때문에 투기 수요 거래를 차단하는 장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국토부는 내달 제2차 장기 주거종합계획 수정안을 확정 고시하면서 후분양 로드맵을 담아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번 로드맵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급하는 공공주택 부문에서의 후분양제를 확정하고, 또 여기에는 민간 건설사에는 공공택지 분양시 우선권을 주는 인센티브가 담길 전망이다.

정부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의 보증한도를 현행 50%에서 70~80%로 확대한다는 계획이지만, 건설업계는 '빚을 내서 집을 지어본들 이자비용을 감안하면 프리미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후분양 의무화'가 '득보다 실이 더 클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심광일 주택건설협회 회장은 지난 2월 "국토교통위에 현재 상정된 (정동영 의원의) 법안이 현 시점에 필요한 민간임대주택 공급 활성화 정책과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급을 저해한다"며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심 회장은 "정책 효과가 불분명한 후분양제보다는 민간임대주택 활성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캐나다·영국·프랑스·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도 법률적으로 '선분양'과 '후분양'을 의무화하지 않으며, 사업 자율에 맡기고 있다. 국내 대형건설사들도 획일적 제도화를 우려하며 시장에 맡겨 줄 것을 요청해 왔다. 즉 이 같은 상황에서 김 회장이 '단계적 후분양제 도입'에 손을면서 입장이 난처해졌다는 것이다.

대형건설사 한 임원은 "정부의 후분양제가 LH공사 등 공공부문에서만 국한되는 상황에서 민간·공공 구분 없이 찬성 입장을 밝힌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국내 주택시장을 지배하는 대형사의 입장에서는 문제가 될 수 없겠지만 전체 시장의 측면에서 보면 후분양제로 인한 후유증은 크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후분양제 찬성 언급이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인 김 회장이 정부의 인센티브를 통해 공공택지를 저가에 매입해 사업을 키울 수 있는 기회로 본 것이 아니냐"는 지적의 목소리도 나온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산업개발은 해외 건설이 없으면서도 국내 시공능력평가 8위를 자랑하는 초대형 건설사"라며 "자유총연맹 대주주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해오다 최근에는 부동산114의 정보력까지 인수한 건설업계의 국정원으로 통한다"고 말했다. 전국의 부동산 공급동향과 가격 동향, 시계열 데이터가 담긴 통계분석 시스템인 렙스(REPS)를 갖춘 건설업체는 현대산업개발이 유일하다.

실제 대형건설사들은 자금력과 축적된 정보력을 바탕으로 자체사업 비중을 확대시키고 있다. 자체사업은 건설사가 용지매입부터 개발·기획, 인허가, 분양·마케팅, 시공, 사후관리까지 총괄하는 사업으로, 이에 따른 수익과 손실을 모두 건설사가 책임지는 구조다. 반면 중소건설사들은 자금조달 여력과 추진력 부족으로 도급 수준에 머물러 있는 현실이다.

최현일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교수는 "후분양이 전면 도입되면 중소건설사들이 주택 사업을 하기 어려워지고, 기대보다 소비자 선택 폭이 넓어지지 않을 수 있다"며 "획일적 제도 보다는 건설사와 청약자들이 선분양과 후분양 모두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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