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한(對韓) 통상 압박이 반도체와 자동차 등 수출 효자 업종까지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사진출처=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유영준 기자] 미국의 대한(對韓) 통상 압박이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을 넘어 철강으로까지 확대되는 가운데 공세가 반도체와 자동차 등 한국의 수출 효자 업종까지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일련의 미국의 공세에 대해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부 차원의 뚜렷한 대응 카드는 없는 실정이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16일 한국 철강제품에 대해 초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3가지 제안이 담긴 보고서를 백악관에 제출했다. 제안 내용은 브라질·중국·코스타리카·이집트·인도·말레이시아·한국·러시아·남아공·태국·터키·베트남 등 12개 국가의 철강에 대해 53%의 관세를 적용하는 방안과 모든 국가에 일률적으로 24%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 국가별 대미 수출액을 2017년의 63%로 제한하는 방안 등 3가지다.

한국산 철강에 53%의 관세 폭탄을 부과하는 권고안이 포함되자 국내 철강업계는 망연자실하는 분위기다. 한국은 대미(對美) 철강 수출국 중 3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 철강업계의 지난해 철강 대미 수출액은 32억6000만달러(약 3조5000억원)에 이른다. 전체 철강 수출액의 약 9.5%다. 미국 수출이 막히면 당장 1만5000여명이 직접적인 고용 타격을 입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4월 11일까지 상무부 제안에 대한 최종 결정을 하게 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했다. 한국은 미국에 연간 280만대의 세탁기를 수출하는 미국의 최대 세탁기 수출국이다. 이 조치는 연간 120만 대를 넘어 수입되는 세탁기에 첫해 50%, 2년 차에는 45%, 3년 차에는 40%의 관세를 부과토록 했다.

예상 피해 규모는 막심하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세이프가드 발동으로 한국산 세탁기 수입 물량이 2016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고 가격은 약 3분의 1 가량 상승할 것으로 관측했다. 삼성·LG 양사가 입을 피해액은 약 1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봤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번 결정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최종 피해는 미국 유통과 소비자, 노동자에게 갈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한국산 태양광 패널에도 최대 30%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하면서 국내 태양광 수출업체또한 막대한 손실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태양광 전지(셀)에는 저율관세할당(TRQ) 기준을 2.5 기가와트(GW)로 정해 이를 초과하면 최대 30%의 관세를 부과하고, 태양광 모듈에는 관세 30%를 부과하기로 했다.

현재 한국은 한화큐셀ㆍLG전자ㆍ현대중공업그린에너지 등이 미국에 태양광 전지와 모듈을 수출하고 있다. 2016년 기준 이들 기업들 대미 태양광 셀ㆍ모듈 수출액은 12억9960만달러(약 1조3904억원)였다. 국내에서 생산된 제품 중 68%에 해당한다. 미국 태양광 수출 비중에서도 한국은 15.6%로 말레이시아(29.5%)와 중국(18%)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조치로 지금까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관세 없이 수출하던 태양광 제품 수출량은 최대 20% 이상 줄어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한화큐셀의 경우 전체 생산 물량의 30%를 미국 수출에 의존하고 있어 큰 타격이 예상된다.

계속되는 미국의 무역 공세에 대해 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비서관·보좌관 회의에서 "불합리한 보호무역조치에 대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FTA 위반 여부 검토 등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통상 압박이 반도체와 자동차 등 수출 효자 업종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인다는 것이다. 코트라(KOTRA)는 지난달 '2017년 하반기 대한(對韓) 수입규제 동향과 2018년 상반기 전망' 보고서에서 미국의 향후 수입규제 예상품목을 철강, 자동차, 가전제품으로 꼽았다.

실제로 지난해 말 미국 반도체 업체인 비트마이트로와 넷리스트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대상으로 메모리 반도체 특허 침해와 관련해 관세법 337조 위반 여부를 조사해달라고 ITC에 요청했다. 이에 ITC는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를 대상으로 위반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만약 ITC가 특허침해를 인정하게 되면 해당 제품은 수입이 금지된다.

글로벌 SSD 시장은 삼성전자가 점유율 30%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SSD의 기반인 낸드 메모리 또한 삼성전자가 장악한 영역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낸드 메모리 점유율을 합치면 무려 50%에 육박한다. 업계는 이번 ITC의 조사가 향후 메모리 반도체의 수입 규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 통상 압박이 가해질 경우 미국의 반도체 수출 3위국인 한국은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사진출처=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반도체 분야에 대한 미국의 통상 압박이 곧바로 한국경제의 위기로 직결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미국은 한국의 반도체 수출 3위국이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53조6500억원 가운데 65%에 해당하는 35조2000억원이 반도체 부문에서 나왔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3년만에 3%를 회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호조’ 덕분이었다.

반도체와 더불어 주력 수출상품인 자동차 역시 살얼음판이다. 앞서 열린 한미 FTA 1ㆍ2차개정 협상에서 도마 위에 오른 핵심 품목이 바로 자동차다. 미국은 무역적자의 원인으로 한미 FTA에 따라 무관세로 수입된 한국산 자동차를 지목하고 있다. 특히 최근 한국지엠의 군산공장 폐쇄를 놓고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대통령 자리에 없었다면 지엠이 디트로이트에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자동차 부문에 대한 무역제재 바람 확산을 예고하기도 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반도체·자동차로 미국의 무역 공세 전선이 확대되면 통상문제가 거시경제 문제로 비화하게 된다. 이는 차원이 다른 문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미국의 통상 압박으로 불확실한 경영 환경이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우리 기업들의 수출 피해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며 “기업들의 자구책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는 만큼 한국 통상 당국이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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