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의 한 공장 공터에 유정용강관의 주재료인 열연코일 제품들이 쌓여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이세정 기자] 한국 철강업계를 겨냥한 미국 정부의 압박이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가 최근 한국을 포함한 주요 철강 수출국에 적용할 강력한 수입 규제 권고안을 백악관에 전달하면서 국내 철강업계는 말 그대로 '공황'에 빠졌다.

정부와 업계는 대책마련에 나섰지만, 당장 이렇다 할 대안을 제시할 수 없어 발만 구르는 상황이다.

19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16일(현지시각) 수입 철강재가 자국의 경제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무역확장법 232조 보고서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특정 수입 제품이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될 시 추가 관세 부과, 수입 물량 제한,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 등을 발동할 수 있는 초고강도 제재 수단이다.

미 상무부는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최소 24%의 관세부과(1안) ▲한국을 비롯해 브라질, 러시아, 터키, 인도, 베트남, 중국, 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집트, 말레이시아, 코스타리카 총 12개국을 대상으로 최소 53%의 관세 부과(2안)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지난해 대미 수출 63% 수준의 쿼터 설정(3안)을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4월 11일까지 최종 결론을 내리게 된다.

무역확장법 232조 발동 여부에 대한 업계 안팎의 전망은 비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당시 대선공약으로 '러스트벨트(제조업의 사양화로 쇠락한 지역)'의 부활을 내걸며 중산층 근로자를 지지기반으로 다졌다. 오는 11월 중간 선거가 예정된 만큼, 지지층 결집 수단으로 수입 철강재에 대한 고강도 압박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트럼프 스스로 보호무역주의가 미국 경기 부양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고 자평하고 있어 정책노선을 우회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정부와 업계는 무역확장법 232조 보고서가 발표되자 곧바로 긴급 민관합동 대책회의를 마련했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주재로 17일 열린 이번 회의에는 이인호 산업부 차관을 비롯해 권오준 포스코 회장, 강학서 현대제철 사장, 임동규 동국제강 부사장, 이휘령 세아제강 부회장, 김창수 동부제철 사장, 박창희 고려제강 사장, 김영수 휴스틸 부사장, 송재빈 철강협회 부회장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하지만 이날 회의에서는 수입산 철강 규제가 실시되면 대미 철강 수출에 차질이 발생할 것이란 인식만 공유했을 뿐, 구체적인 대응 방안은 언급되지 않았다.

업계는 50%가 넘는 관세가 부과되는 2안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꼽는다. 대미 수출길이 사실상 원천차단된다는 이유에서다.

포스코는 60.93%의 반덤핑·상계관세가 부과된 상태인데 2안이 채택되면 관세율은 최고 110%으로 뛴다. 현대제철도 최소 53%의 관세가 추과되면 70~90%의 관세 폭탄을 떠안게 된다. 미국 매출 비중이 약 25% 수준인 세아제강의 미국 유정용 강관 반덤핑 관세율은 6.66%다. 2안이 적용될 경우 60%가 넘는 관세가 붙어 사실상 수출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른다.

국내 주요 철강사들은 각 시나리오별 대비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A철강사 한 관계자는 "추가 관세가 붙는 1안과 물량을 제한하는 3안의 경우 적게나마 수출이 가능하다"며 "하지만 2안이 채택되면 미국 수출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신규 시장 발굴과 기존 진출 국가 수출량 확대 등의 방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B철강사 관계자는 "미국 수출분을 상쇄하기 위해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거나 수출 판로를 다변화하는 과정을 염두에 두고 있다"며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최정 결정이 나온 것은 아닌 만큼, 자세한 대응 전략을 밝힐 순 없다"고 조심스레 답했다.

C철강사 관계사는 "현재 추이를 지켜보고 있지만, 뚜렷한 방안이 없다"면서도 "철강은 내수 중심 산업이기 때문에 미국 수출량이 많지만, 예상보다 압박 수준이 높아 정부와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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