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구 금융위원장(왼쪽), 김외숙 법제처장(오른쪽) <사진출처=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김민석 기자] 정부부처와 금융당국이 금융정책을 놓고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1월 3일 차명계좌의 과징금 부과 가능 여부를 법제처에 문의했다. 1993년 8월 12일 이전 개설 차명계좌 27개가 대상이었다.

금융위가 법제처에 법령해석을 요구한 부분은 해당계좌가 금융실명법상 과징금 대상인지 판단해달라는 것이었다.

법제처는 12일 금융위에 "1993년 금융실명제 실시 이전 타인이 자신의 명의로 개설한 계좌를 실명전환 의무 기간 내 타인 명의로 실명 확인했어도 자금 출연자가 따로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경우 차명계좌 실명으로 전환하고 금융기관은 과징금을 원천징수해야 한다"고 회신했다.

금융위는 당황했다. 금융위는 현행법상 과징금 부과가 어렵다는 입장으로 해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그동안 가명으로 만들어진 비실명계좌에만 실명 전환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아이들 이름, 동창회 이름 등으로 유지되는 '선의의 차명계좌'도 많다"며 "이런 계좌에 과징금을 물리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금융위는 이건희 삼성회장의 차명계좌가 세간의 주목을 받는 가운데 곤란한 처지가 됐다.

금융위가 법제처의 해석을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위반할 경우 감사를 받게 돼 법제처의 해석에 발맞출 것이 유력하다.

금융위는 법제처의 해석을 뒤집었다. 과징금 부과에 기초가 되는 금융회사의 계좌 원장이 없어 현실적인 어려움에 봉착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13일 서울정부청사에서 '금융실명법 해석 관련 태스크포스(TF)'를 열고 법제처 법령해석과 관련해 금융회사 업무 처리 시 실무운영상 의문점이 발생하면 관계기관 공동 TF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밝히며 과징금에 대한 명확한 답안을 내놓지는 않았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행정혁신위원회의 권고안과 유사한 법제처의 해석에 대해 금융위 측에서도 현재 다각도로 논의 중"이라며 "과징금 부과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차명계좌 과징금을 놓고 정부부처인 법제처와 금융당국인 금융위가 상반되는 입장을 고수하는 국면이 계속될 전망이다.

정부부처와 금융당국의 의견이 엇갈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시중 유동성 주택 시장 쏠림에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완화 대안으로 등장한 부동산간접투자상품인 '리츠' 활성화 대책에서도 엇박이 낫다.

정부는 지난해 리츠 공모제도 개선을 위한 부동산투자법 개정안 제출, 비개발·위탁 관리리츠 상장심사기간 단축, 모(母)리츠의 간주 부동산 인정 한도 폐지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가계부채종합대책에서 발표한 리츠 공모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안을 지난해 12월까지 마무리 하겠다고 밝혔으나 계획대로 추진되지 않았다.

이 가운데 2월까지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한 공모형 부동산펀드 추택채권 매입의무 면제를 제외한 나머지 개선안은 12월에 마무리가 됐어야 했다.

하지만 리츠 주무부처인 국토부와 금융상품 감독 당국인 금융위 간 협의가 지지부진하며 제도 개선이 가로막혔다.

금융위의 협조가 필요한 비개발·위탁관리리츠 상장심사기간 단축, 모리츠의 간주부동산 인정 한도 폐지가 진척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토부와 금융위의 리츠에 대한 엇박자는 2016년 7월에도 있었다.

금융위는 2016년 제10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리츠 투자 활성화를 위해 보험사 지급여력비율 산정 시 출자 신용위험계수를 낮춘다는 방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냈다.

금융위와 국토부가 성장하는 부동산자산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갈등에 관련 제도 개선이 지지부진한 것이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왼쪽),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사진출처=연합뉴스>

가상화폐 대책도 마찬가지다.

올해 초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검토"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최흥식 금융감독원장도 "가상화폐 거품이 빠질 것에 내기해도 좋다"고 발언한 바 있다.

하지만 가상화폐 규제 제정에 참여한 금감원 직원이 내부정보를 이용해 가상화폐 차익을 얻은 사건이 밝혀지며 해당 발언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31일 "가상화폐를 없앨 생각은 없다"며 외려 가상화폐 관련 컨트롤 타워를 기재부로 가져올 것이라 밝혔다.

결국 금융당국이 나서 가상화폐 실명제를 도입하며 논란이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비판이 일면서 '부처간 협의도 없지 규제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가상화폐와 관련한 정부부처와 금융당국이 내놓은 엇박자 규제는 가상화폐 거래자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이낙연 총리는 이에 대해 "부처 간 의견이 다를 수 있다"고 토로했다.

정부부처와 금융당국 사이의 엇박자는 '가이드라인 만능주의' 때문이라는 분석이 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규제를 줄이기 위해 '샌드박스식' 규제 도입을 강조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금융사에 대한 규제권한을 놓고 싶어 하지 않아 문제가 생기면 즉시 가이드라인을 양산했다.

정부가 주장하는 규제개혁은 당국의 그림자 규제로 빛을 잃고 있는 셈이다.

이번 정부에서 등장한 주요 가이드라인은 △대출채권의 소멸시효 관리 등에 대한 모범규준 △DSR모범규준 △개인사업자대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연체금리체계 모범규준 △가상통화 관련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 △채용시스템 가이드라인 등이다.

이 모든 가이드라인은 정부가 경제정책을 내놓으면 금융당국이 가이드라인으로만 대응하며 양산된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 당국 입장에서는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사전규제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규제가 필요하다면 법률이라는 상위규제를 도입하고 그렇지 않다면 불필요한 규제는 타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후 정부부처가 발표할 금융정책에 금융당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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