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이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 과제인 근로시간단축에 동참하면서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바람이 일고 있다.<사진출처=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유영준 기자] 삼성전자와 신세계, SK하이닉스 등 대기업들이 근로시간 단축에 동참하면서 최저임금 인상, 기업 규제 등으로 정부와의 관계가 소원했던 재계가 모처럼 발을 맞추는 분위기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경우 인력난, 자금난 등 현실이 벽이 여전히 높아 바람이 확산될지는 미지수다.

워라벨 바람의 진원지는 독일이다. 독일에서는 가족 중심의 근로시간 개념이 확산되며 2007년부터 남성의 육아휴직이 활발히 이뤄졌고, 이는 유럽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던 출산율의 회복으로 이어졌다. 지난 8일에는 독일 최대 노조인 금속노조와 고용주 연맹이 근로시간을 기존 주 35시간에서 28시간으로 단축하는 데 합의했다.

한국에서도 근로시간 단축이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 과제로 솟아 있는 가운데 선두는 삼성전자다. 지난해 7월 일부 부서를 대상으로 주 52시간 근무제 시범 운영에 들어가면서 가장 먼저 근로시간 단축에 동참했다. 올해부터는 적용 범위를 전체 부서로 확대한데 이어 지난달 15일에는 전체 임직원의 주당 근로 시간이 52시간을 넘기지 못하도록 근태 입력 시스템을 개편했다.

SK하이닉스 역시 2월 한 달 동안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범운영한다. 다음 달부터 직원들의 근무 시간이 52시간을 넘는 부서장에 경고를 하는 식으로 시스템을 개편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시범운영 기간을 거쳐 부작용과 변수를 고려해 주당 52시간 근무체계를 본격적으로 적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IT업계도 동참한다. LG전자는 2월부터 홈엔터테인먼트 사업본부의 일부 조직을 대상으로 주 52시간 근무에 대한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다음 달부터는 생활가전제품, 이동단말, 자동차 부품 등 전 사업부로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 관계자는 "시행 과정의 부작용과 애로 사항을 해결해 다른 사업부까지 근무시간 단축 제도를 확대 적용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업계 특성상 휴일·야근 근무가 비일비재한 유통업계에서도 근무시간 단축이 이어지고 있다. 신세계는 올해부터 모든 임직원의 근무시간을 주당 35시간까지 줄였다. 35시간은 국내 기업 중에는 최초다. 다음 달부터는 일부 점포의 개점 시간도 오전 10시 30분에서 11시로 30분 늦춘다. “임직원에게 ‘휴식이 있는 삶’과 ‘일과 삶의 균형’을 제공하겠다”는 신세계 방침의 연장선상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불필요한 야근과 회의 등이 없어져 업무 능률이 더 향상됐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그러나 이런 대기업 중심의 근로시간 단축 움직임이 중소기업에까지 확산될지는 미지수다. 상대적으로 인력이 부족하고 인건비에 대한 타격도 크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 협력업체의 경우 주문 물량을 기한에 맞춰 생산하기 위해서는 초과근무가 불가피하다”며 “특정 계절에 업무가 몰리는 경우도 많다보니 이 시기에 근로시간 단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업계의 상황을 전했다.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도 “정책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인력 수급 등을 고려해 관련 정책이 연착륙하도록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현실적인 대책을 주문했다.

전문가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근로시간 단축은 필요하지만 그 혜택이 일부 대기업에게만 돌아가다 보니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일자리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최영기 한림대 교수는 “대기업이 근무시간을 줄일 때 중소 협력사들도 근무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현실적인 보완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대기업만 근무 환경이 좋아지는 현상은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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