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 사건 항소심 선고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삼성과 박근혜 전 대통령 사이에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에 관해 묵시적인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삼성의 정유라 승마 지원(72억9427만원)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16억2800만원)을 그 청탁의 대가로 봤다. 항소심에서도 유무죄를 가를 키워드는 ‘묵시적 청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에서 ‘묵시적 청탁’에 관한 판례를 찾아보면 가장 오래된 건으로 1984년2월21일 영동 부정대출사건이 검색된다. 당시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배임수재 혐의에 대해 “부정한 청탁은 명시적으로나 묵시적으로나 모두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묵시적 청탁과 관련해 국민들의 뇌리에 가장 깊이 각인된 사건은 세칭 ‘변양균·신정아 사건’일 것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2010년 발간한 판례연구 제24집에는 ‘묵시적인 의사표시에 의한 부정한 청탁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이 사건을 다룬 논문이 수록돼 있다. 특히 이 사건은 여러 모로 이재용 사건과 닮은 면이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 논문을 토대로 당시 사건을 되짚어보면 변양균 피고인에게 적용된 혐의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제3자 뇌물수수. 변 피고인이 10여개 기업의 대표나 경영자들을 접촉해 신정아 피고인이 근무하고 있던 성곡미술관에 협찬할 것을 요구했다는 혐의였다.

두 번째는 뇌물수수. 변 피고인이 동국대학교 총장에게 “신 피고인을 교수로 채용하면 학교 재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등의 언질로 신 피고인을 교수로 채용토록 요구함으로써 신 피고인이 매월 350만 원 정도의 급여와 각종 수당 등 유무형의 재산상 이익을 누리게 했다는 혐의였다.

세 번째는 알선수재. 배임혐의로 구속돼 있던 성곡미술관장의 배우자와 관련, 변 피고인이 관장으로부터 ‘재판에 힘을 써달라’는 부탁과 함께 3억 원의 사례금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이 사건에서 변 피고인을 박 전 대통령, 신 피고인을 최순실, 또는 정유라, 기업체 대표나 동국대 총장을 이 부회장으로 치환해 보면 큰 얼개가 유사하다.

즉, 이 부회장(기업, 동국대)이 박 전 대통령(변 피고인)의 요구로 최순실(신 피고인)과 관련된 K재단, 미르재단, 승마협회 지원(성곡미술관 협찬, 신 피고인 교수채용)을 했다는 게 사건의 골자다.

그러면 변양균 사건의 결말은 어떻게 났을까. 주지하다시피 변 피고인은 세 가지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판례연구의 논문에 따르면 알선수재 부분에 대해서는 성곡미술관장이 변 피고인에게 건넸다는 3억 원의 출처 및 마련 경위에 대해 관장의 동생 등 관련자들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은 점이 무죄판결 이유였다.

또 뇌물수수 부분은 피고인들이 별도의 가계를 운영하고 있으므로 신 피고인이 받은 대학 조교수 직위의 혜택을 변 피고인이 받은 것과 같다고 보기 어렵다(경제동일체가 아니다)는 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끝으로 제3자 뇌물수수 부분은 ▲기업들이 전부터 메세나 활동을 해온 점 ▲메세나 활동은 유력 인사의 부탁에 의해서도 상당수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인 점 ▲기업들이 변 피고인에게 자신들의 일상적 모든 현안에 대해 유리하게 해달라는 청탁의 취지로 후원금을 지급했다고 인정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한 점 등이 무죄판결 이유였다.

이 판례연구 논문의 핵심은 특히 세 번째 이유에 대한 법률적 취지 해석에 있다. 논문은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부정한 청탁이 있다고 하기 위해서는 당사자 사이에 청탁의 대상이 되는 직무집행과 제3자에게 제공되는 금품이 그 직무집행에 대한 대가라는 점에 관해 ‘공통의 인식이나 양해’가 존재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묵시적 청탁의 인정요건으로 ‘대가성에 대한 공통의 인식이나 양해(공감)’를 요구한 것이라는 점에서 획기적이라고 평가했다. 즉, 어느 한쪽이라도 대가성에 대한 인식을 갖지 못했다면 묵시적 청탁으로 인정되기 어렵다.

이처럼 ‘묵시적 청탁’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상당히 제한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기존의 판례다. 사흘 뒤의 항소심 재판부는 묵시적 청탁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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