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민철 기자]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셀·모듈에 대해 끝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함에 따라 국내 기업들도 대응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부당한 조치라며 보복관세와 세계무역기구(WTO)제소로 응수에 나서면서 한미 양국간 통상전쟁이 가시권에 들어선 상황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행동은 LG와 삼성이 미국에 주요 세탁기 제조공장을 짓겠다는 최근 약속을 완수하는 강력한 유인책을 제공할 것(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언급에서 자국 보호주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국내 기업의 현지화를 유도해 자국의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 보호주의에 사실상 국내 기업들의 선택지는 좁아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압박이 세탁기와 태양광에 그치지 않고 다른 가전제품이나 최대 수출 품목인 자동차, 반도체, 철강 등 전방위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국내 기업들의 우려는 심각한 수준이다.

당장 판매 감소와 수익성 악화에 놓인 국내 가전 업체들은 현실적으로 미국 현지 공장 가동을 최대한 앞당기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통상압박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면 국내 기업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미국 현지에 공장을 짓거나 해외 투자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국내 기업환경도 부담이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기조와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법인세 인상 등 인한 열악한 경영환경에 국내 기업들이 이래저래 ‘脫한국’을 요구받고 있는 형국이다.

◆美로 나가는 세탁기·철강·자동차…앞으로 해외 투자 확대 될 듯

미국 정부의 통상압박에 현지 공장 건립을 진행하고 있는 삼성전자 LG전자는 이번 미국의 조치로 조기 가동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 요청으로 삼성과 LG가 미국에 공장을 지어 일자리 창출까지 해온 터라 당혹감은 크다.

삼성은 우선 지난 12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뉴베리카운티에 새로 지은 가전 공장을 본격 가동하고 생산품 출하식까지 마친 상태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뉴베리 세탁기 공장에는 2020년까지 투자비용으로 약 3억8000만 달러가 투입된다. 이 공장에서는 매년 약 100만대에 이르는 세탁기 물량이 제조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말까지 직원을 1000명 규모로 늘려 2교대 근무로 공장을 운영하는 등 제조 물량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LG도 2억5000만 달러 규모의 자금을 투입해 세탁기 공장을 짓고 있다. LG는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2019년 1분기까지 완공할 계획이던 공장을 올 연말까지로 앞당기기로 했다.

그럼에도 당분간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지에서 공장을 가동하더라도 생산 물량 한계로 일정 수준의 세탁기를 미국으로 수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삼성·LG전자가 미국에 수출하는 물량은 연간 300만대 정도로, 현지 공장에서 생산하는 세탁기는 각 최대 100만대 정도다. 게다가 공장 내 전체 라인업 모두를 가동하기까지도 수개월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이프가드 조치가 세탁기에만 한정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세탁기 세이프가드를 이끌어낸 미국 최대 가전업체인 월풀이 국내 냉장고로 타깃을 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러 경우의 수를 대비해야 하는 국내 기업에서는 세탁기 이외에도 추가적 현지 생산 라인 확보가 필요한 만큼 국내 투자금이 해외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도체도 미국의 통상압박의 가시권에 놓여있다. 미국의 미국 반도체 기업인 ‘비트마이크로’(BIT MICRO)는 지난달 21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델, 레노버, hp, 에이서스, 바이오 등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 제조업체와 이 기술을 이용한 업체들을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관세법 337조를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ITC는 이 조항에 따라 미국 기업이나 개인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한 제품의 수입 금지나 판매금지를 명령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소송이 사실상 한국 기업들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SSD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선두 업체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미국의 통상 압박이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철강도 미국 행정부 사정권에 들어있다. 이미 유정용 강관, 송유관, 도금·컬러 강판, 열연강판, 냉연강판, 후판 등 주요 철강 제품은 대부분 반덤핑 관세나 상계관세를 부과 받고 있는 상탣가. 여기에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제재조치 여부가 진행 중이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담덤핑 관세를 부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무역확장법까지 적용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최악의 상황도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통상압력에 일부 중소 업체는 이미 생산기지의 미국 이전을 결정했다. 중견 철강업체 넥스틸은 올해 상반기 국내 생산시설 일부를 미국 휴스턴으로 옮기기로 했다. 넥스틸의 주력 제품인 유정용 강관은 국내에는 수요가 거의 없으며 미국을 포함한 북미 지역으로 대부분 수출한다. 이 업체는 지난 2014년 7월 미국 상무부가 유정용 강관에 9.89%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것을 계기로 미국 공장 설립을 검토해왔으며 최근 미국이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자 미국내 공장설립을 검토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무역적자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는 자동차도 언제든 관세 장벽에 가로막힐지 모르는 상황이다. 현대자동차는 대비책으로 5년 동안 미국에 31억 달러를 투자하고 새로운 공장을 지어 제네시스 차량과 SUV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통상압력 장기화시, ‘脫한국’ 쏠림현상 가속화?

전문가들은 미국의 통상압력이 강화되거나 장기화 국면에서 피해가 예상되는 기업들은 해외 공장 이전 등 기업들의 ‘脫한국’ 쏠림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發 보호무역주의가 중국 등 주요 국가들로 확대된다면 이러한 현상은 가속화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 기업환경도 녹록지않다는 점도 국내 기업들의 ‘탈한국’ 요인으로 꼽힌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미국의 통상압력은 (국내 기업이)미국에 수출하는 TV, 냉장고 등 전자제품과 자동차, 태양광 전지, 반도체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제조업을 부활시키려는 상황에서 미국의 통상압력으로 국내산 제품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WTO제소는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승소를 하더라도 관세 등 다른 방법으로 규제가 가능해 효과적이지 않다”며 “(미국의 조치에)결국 기업들이 미국 현지 공장을 통해 생산 비중을 높이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관측했다. 그는 “현재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기업환경도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도 문제”라며 기업들의 脫한국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국내 일자리가 줄어들 소지가 다분해 걱정스럽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익명을 요구한 통상 분야 한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이 미국 현지 내수만 믿고 현지화 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동유럽 시장이든 신흥시장이든 수출다변화와 등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글로벌 트렌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젠 기업 입장에서는 미국 시장만을 바라 볼 것이 아니라 아세안 등 기회를 다른 시장에서 찾고, 글로벌 시장 전체를 보고 대응해야 한다”며 “미국 시장을 대체할 새로운 현지 시장 공략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현지 투자 보다는 신흥국 투자에 나서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어 “앞으로 통상문제가 장기화 되면 직접적 피해를 보는 기업들은 새로운 시장 창출을 위한 공격적 해외 현지 투자를 요구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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