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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칼럼] '사토시 나카모토가 보내 온 편지'

내 이름은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하네. 일본식 이름이지만 내가 진짜 일본인인지에 대해서는 시인도 부인도 않는다(NCND)는 게 나의 일관된 입장일세. 누군가는 내가 한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거나 기업일 것이라고도 하는데 그 역시 확인해 줄 생각이 없다네.(한때는 내 이름의 영문 표기를 근거로 삼성, 도시바, 노키아, 모토롤라의 합작기업이라는 황당한 얘기가 돌기도 했다더군.^^)

어쨌거나 나는 최근 벼락 스타처럼 국제적 유명인사가 됐다네. 특히나 아시아 대륙의 끝에 붙어있는 대한민국에서의 유명세는 나 스스로도 어리둥절할 정도야. “아침에 일어나니 유명해져 있었다”고 한 바이런의 느낌이랄까.

이 유명세는 내가 고안한 비트코인이라는 암호화폐 덕분이지. 한국에서는 얼마 전까지도 암호화폐에 열광한 지지자들이 외쳐대는 ‘가즈아~’ 소리가 들려오더군. 그런데 불과 며칠 사이에 그들의 구호가 ‘존버’로 바뀌었다고 들었어.(존버는 끝까지 버티자는 뜻의 비속어라며?)

사정이 이렇게 돌변한 것은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 리스크 때문일 걸세. 중국 등 주요국 정부의 규제 움직임은 한껏 달아오르던 암호화폐 시장에 찬물을 끼얹었지. 특히 한국 정부 당국자들의 ‘거래소 폐쇄 검토’ 발언이 가격 폭락의 도화선에 불을 댕긴 모양이더군.

때문에 암호화폐에 투자했던 이들이 요즘 정부를 향해 격분하고 있다며? 반면 “암호화폐 투자는 도박이거나 폰지 사기일 뿐”이라며 정부 입장을 지지하는 이들도 있다고 들었네.

정부와 투자자들의 이런 마찰과 이견에 대해 내가 가치판단을 할 생각은 없고 그럴 입장도 아니야. 다만 차제에 양측 다 암호화폐의 취지와 본질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 볼 것을 당부하고 싶다네.

자네도 알겠지만 나는 2008년 8월18일 인터넷에 ‘bitcoin.org’라는 도메인을 등록했어. 미국에서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 사태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위기로 치닫고 있던 때였지. 그 후 10월31일에는 한 메일링 리스트에 암호화폐에 대한 내 아이디어를 담은 문건을 게시했다네. 제목은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 암호기술을 활용해 비트코인이라는 전자화폐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일종의 제안서였어.

나는 이 제안서 서론에 어떤 취지로 비트코인을 고안했는지를 담았네. 압축해서 말하자면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신뢰기반에 의지하지 않고 개인과 개인이 직접 돈을 주고받을 수 있는 온라인 지급결제 시스템을 만들자’라는 취지였지.

가령 오프라인에서 콜라 한 병을 산다 치자고. 가게에 들어가 내 ‘지갑에서’ 돈을 꺼내 지불하고 콜라를 받으면 끝이야. 제3자가 끼어들 필요가 없지.

그런데 온라인 쇼핑몰에서 콜라를 산다면 얘기가 달라져. 내 지갑에서 돈을 꺼내 상대방에게 직접 전달할 방법이 없단 말이지. 때문에 현재 인터넷에서의 상거래는 금융기관이 제3자로 개입하는 전자지불 방식에 의존하고 있지. 물론 이 방식도 충분히 잘 작동하고 있기는 해. 하지만 금융기관이라고 하는 제3자가 개입하는데 따른 태생적 약점을 안고 있지. 즉, 수수료 등의 거래비용이 발생하는 것이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예전부터 P2P네트워크를 통해 거래 당사자가 직접 전자화폐를 주고받는 방안이 연구돼 왔다네. 다시 말해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나의 전자지갑에서 상대방의 전자지갑’으로 직접 온라인 지불을 가능하게 하는 방안이지.

그런데 전자화폐를 만든다 해도 단순히 P2P네트워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결함이 있어. P2P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용자는 서로를 믿을 수 없다는 점일세. 토렌트 사용자들이 가끔 가짜 파일에 사기 당했다고 하는 호소하는 사례들이 바로 그런 경우지. 전자화폐의 경우에는 이중지불(double spending) 같은 사기행각이 벌어질 수 있겠지. 이중지불이란 디지털 서명을 복제하는 등의 방법으로 전자화폐를 중복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네. 일종의 위조지폐 발행인 셈이지.

이런 문제를 컴퓨터 공학계에서는 ‘비잔틴 장군들의 딜레마’라고 불러왔다네. 광대한 영토에 흩어져 주둔한 장군들이 동시에 하나의 성을 공격해야 하는데 그들 간에 완전한 신뢰가 없다면 어떤 방법으로 공동작전을 펴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게 골자야.

나는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블록체인과 암호화 기술, 작업증명(PoW) 시스템을 이용한 ‘분산 네트워크 타임스탬프 서버’를 구현할 것을 제시했다네. 쉽게 말하면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네트워크 내에서 이루어지는 전자화폐 거래들의 시간 순서를 암호해석을 통해 입증하게 만들도록 하는 시스템이지. 이렇게 하면 내가 A에게 전자화폐를 지불한 후 곧바로 B에게도 같은 전자화폐를 지불할 경우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시간순서상 A가 받은 전자화폐가 먼저 지불된 것임을 입증해 이중지불을 차단하는 것이야.

이것이 바로 내가 제안한 비트코인 시스템의 얼개일세. 나는 이듬해인 2009년 1월3일 비트코인 소프트웨어를 오픈코드 소스로 만들어 공개했어. 그리고 스스로 제 1호 블록(비트코인 지지자들은 성경의 창세기에 비유해 Genesis block이라고 부른다고 하더군)을 만들고 그 보상으로 50개의 비트코인(BTC)을 챙겼지. 이 최초의 블록에 나는 다음과 같은 문구를 남겼다네. ‘The Times 03/Jan/2009 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 챈슬러라는 은행이 구제금융을 받는 두 번째 은행이 됐음을 전하는 1월3일자 타임지 기사를 언급한 거지. 첫 블록의 탄생 시점을 입증하는 일종의 타임스탬프라고 할 수 있어. 아울러 기존 화폐 시스템의 불안정을 꼬집고 싶었던 게 내 솔직한 심정이야.

지금까지 장황하게 늘어놓은 설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내가 비트코인을 고안한 것은 ‘국가가 화폐발행권을 독점하고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신뢰기반에 의지하는’ 기존 금융시스템을 벗어나 보자는 취지였다네. 그리고 나의 이런 취지에 동조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비트코인 네트워크가 형성됐고 리플, 이더리움 같은 또 다른 암호화폐들도 속속 등장했지.

그런 차원에서 최근에 벌어진 암호화폐 가격의 급등은 나 스스로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야. 나만이 아니라 초기에 암호화폐에 관심을 가졌던 이들도 마찬가지지. 오죽하면 라슬로라는 친구는 파파존스 피자 두 판에 1만개의 비트코인을 지불했겠나.

그렇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암호화폐의 버블 논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내가 보기엔 이래. 처음엔 누구도 ‘비트코인 가격은 얼마’라고 단언할 수가 없었지. 그러다 거래소라고 하는 시장이 생기면서 가격이 형성되기 시작하지. 마치 외환시장에서 달러나 엔화 등이 거래되듯이 비트코인이라는 ‘외환’을 거래하는 셈이야. 그리고 조지 소로스 같은 사람들이 파운드화나 위안화를 두고 베팅을 하듯이 암호화폐 시장에서도 투기적 거래가 이뤄지기 시작하고.

만약 비트코인의 미래를 극히 밝게 봐서 장차 세계의 모든 화폐를 비트코인이 대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투자자라면 비트코인에 얼마의 가격을 매길까? 현재 전 세계 화폐 총액을 원화로 환산하면 8000조 원 정도라고 해. 더 이상 화폐발행이 없다고 치면 최대 2100만개인 비트코인의 개당 가격은 약 400억 원이 되겠군. 물론 이는 재미삼아 해보는 극단적인 상상일 뿐이야. 실제로는 비트코인 외에 다른 암호화폐들도 무수히 생겨나고 있고 또 암호화폐가 기존의 모든 화폐를 대체한다는 것도 비현실적이지.

이제 슬슬 결론을 얘기해야겠군. 내 생각에 지금 암호화폐는 ‘화폐경제 시스템의 대안’이라는 본래의 취지보다는 오로지 투자상품으로만 인식되고 있어. 그리고 그 시장은 이성적 판단보다는 탐욕과 공포, 질시가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이야. 암호화폐의 창안자인 나로서는 씁쓸한 일이지. 하지만 나는 기존 화폐의 역사가 그래왔듯이 암호화폐 역시 이종화폐와의 경쟁을 거치며 진화해 나갈 것이라고 믿고 싶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비즈니스가 탄생하고 부가가치가 창출되겠지. 그러니 정부도 투자자도 암호화폐에 대해 지나친 환상을 품지도, 그렇다고 도박이나 사기로 치부하지도 말았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라네. 그럼 이만 줄이네.

P.S 만약 이 편지에 암호화폐에 관한 틀린 정보가 있다면 그건 나의 구술을 받아 적고 있는 임혁이라는 친구가 말귀를 잘못 알아들어서 그런 것이니 너그럽게 양해해 주길 바라네.

임혁  lim54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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