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강남구 대치2단지.

[이뉴스투데이 유준상 기자] 수도권 공동주택을 중심으로 리모델링사업 바람이 불고 있다. 현 정부의 지속적인 부동산 규제가 재건축의 숨통을 옥죄고 있어서다. 그 여파로 사업 추진 방식을 놓고 리모델링과 재건축을 저울질하던 단지들이 리모델링으로 돌아서고, 기존 리모델링 단지 내 재건축 지지 주민들도 입장을 선회하면서 리모델링 추진에 힘이 실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동산시장에 부는 리모델링 바람을 다뤄봤다.

수도권에 리모델링 바람 ‘솔솔’… 리모델링 태동기 단지 ‘시선집중’

양천구 신정쌍용은 증축형 리모델링이 시행된 후 ‘수직증축’을 채택한 단지 중 독보적인 사업 속도를 내고 있다. 사업 초기부터 리모델링과 재건축을 놓고 나뉘던 주민들의 여론이 최근 연이은 정부의 재건축 규제 대책으로 인해 리모델링으로 수렴된 게 주효했다는 전언이다.

17일 신정쌍용 리모델링주택조합(이하 조합)의 이화진 조합장은 “정부의 재건축 규제책 발표 이후 주민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재건축은 수익성이 더는 안 나온다는데 중지가 모아지면서 사업에 탄력이 붙고 있다. 최근 사업계획승인 신청 조건(75%)을 충족하기 위해 현재 65%의 동의율을 확보했다”라고 설명했다.

신정쌍용 리모델링은 사업계획승인을 받으면 권리변동총회를 거쳐 이주 및 공사에 들어가는 등 사업 마무리 단계에 돌입한다. 이 사업은 양천구 신목로 9(신정동) 일대 1만137㎡에 위치한 신정쌍용아파트를 용적률 409.18%, 건폐율 58.91%를 적용한 지하 2층, 지상 2층~18층 공동주택 2개동 310가구로 리모델링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중 270가구가 조합원 분양분이고 40가구가 일반분양분이다.

서울 성수동 옥수동 극동아파트(이하 옥수극동)도 리모델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9월 쌍용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한 뒤 최근 안전진단 절차에 본격 돌입했다.

17일 도시정비업계에 따르면 최근 성동구청은 옥수극동 리모델링 정밀 안전진단 용역 입찰을 공고했다. 용역비는 약 4억6000만원으로 책정됐다. 지난해 9월 옥수극동 리모델링 조합이 안전진단을 신청, 지난달 10일 용역비 예치금을 입금함에 따라 본격적인 진행이 이뤄지는 것이다.

1986년 준공한 옥수극동은 매봉산과 접한 3개동을 대상으로 향후 3개층을 증축한 리모델링을 통해 지하 5층~지상 18층 8개동 1035가구로 탈바꿈한다. 시공자는 쌍용건설이다.

리모델링 태동기에 들어선 단지에도 부동산시장의 이목이 집중된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훼미리아파트(이하 잠원훼미리)는 내달 리모델링주택조합 설립에 들어갈 예정이다.

17일 잠원훼미리 리모델링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지난달부터 조합 설립을 위한 주민 동의 절차를 밟고 있다. 오는 2월 내로 주민들을 대상으로 리모델링 설명회와 조합 창립총회를 개최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잠원훼미리 리모델링 추진위는 기존 지상 18층 아파트 3개동 288가구를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통해 최고 20층 아파트 3개동 310여 가구로 탈바꿈시킨다는 구상이다. 기존 전용면적 84㎡ 주택이 103㎡로 확장될 예정이며 시공자는 현대산업개발이다.

이촌현대아파트는 수평증축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의 연이은 부동산 규제 대책으로 위축된 재건축 수요, 리모델링으로 ‘선회’
“재건축 통한 자산가치 상승 아닌 리모델링 통한 주거안정 주택정책 장려해야“

그렇다면 리모델링이 이렇게 각광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동산 전문가들에 의하면 문재인 정부가 투기와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연이어 내놓고 있는 부동산 규제 대책으로 재건축 수요 중 리모델링으로 전향한 비율이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수도권에서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하는 단지는 서울시 27곳, 성남시 7곳, 수원시 3곳, 안양시 3곳 등 40곳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지난해 6ㆍ19 부동산 대책과 8ㆍ2 부동산 대책, 주택대출 규제책을 연이어 내놓으면서 재건축 시장을 조였다. 

먼저 재건축 개발 이익 일부를 국가가 거둬가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도(이하 초과이익환수제)가 예정대로 새해 들어 부활한 점이 치명타다. 이 제도는 두 차례에 걸친 유예기간이 지난해로 끝나면서 앞으로 시세 차익 등 재건축 개발 이익 가운데 일정 수준을 넘는 부분은 세금으로 내야 한다.

초과이익환수제는 2006년 참여정부 시절 처음 도입된 제도로, 재건축 추진위원회 구성시점부터 입주시점까지의 평균 집값 상승분에서 공사비나 조합운영비 등 개발비용을 뺀 금액이 3000만원 이상일 경우 이를 초과이익으로 간주하고 누진적으로 조합에 부담금을 부과시키는 것으로 말한다.

2006년 도입된 이 제도는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2017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유예기간이 연장됐다. 하지만 지나치게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더이상 유예기간을 연장시키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올해 1월 1일부터 다시 시행됐다. 이후부터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하는 재건축 단지는 모두 초과이익환수제의 대상이 된다.

정부는 5월에 서울 지역 초과이익환수제 적용 사업장의 세대별 부담금 예상액을 통지해 재건축 수요를 완화해 나가기로 했다.

문제는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점이다. ‘투기과열지구 지정’으로 인해 해당 지역 내 재건축 조합원에게는 1주택만 허용됐다. 이로 인해 기존 사업지 중 사업시행계획 변경 작업을 거쳐야 하는 단지들이 부지기수로 생겨났다. 또 ‘재개발 조합원 분양권 전매 제한’으로 인해 강북 지역 재개발 사업 거래도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이밖에도 양도세 강화, 신DTI,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장기보유특별공제 배제, 총체적상환능력심사제도(DSR) 도입, 등 갖가지 부동산 규제 대책이 쏟아져 나오면서 재건축시장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재건축과 리모델링 고유의 사업 특성에서 기인하는 이유도 있다. 재건축은 철거 후 신축하는 방식이고, 리모델링은 골조를 남겨둔 기존 건축물을 개선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연한에서부터 큰 차이를 보인다. 2014년 9월 부동산 활성화 대책으로 재건축 연한이 40년에서 30년으로 축소됐지만 15년인 리모델링 연한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재건축은 기존 건축물의 용적률이 높을수록 일반분양 물량이 줄어들고 공사비가 증가해 사업성이 떨어지는 사업 구조이지만 리모델링은 이에 구애받지 않고 최대 15%ㆍ3개층 증축(수직증축)이 가능하다.

앞으로의 전망도 재건축이 아닌 리모델링의 손을 들어준다. 리모델링은 현 정부가 적극 추진하는 도시재생사업과 추진 방향ㆍ사업 방식에 있어 불협화음 없이 융화를 이룬다는 이유에서다. 현 정부는 ‘전면 철거 후, 대규모 개발’을 대신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국지적 개발 방식을 장려하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리모델링이 맥을 같이 하는 사업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한국리모델링협회 차정윤 부회장은 “5년 전 수도권 공동주택 중 180여 곳이 리모델링을 추진했다가 재건축 연한 축소로 40여 곳으로 축소된 바 있다. 이번에 초과이익환수제가 시행되면서 재건축에 기웃거리던 단지들이 다시 리모델링으로 선회하고 있다. 리모델링 추진 단지와 계획이 있는 단지를 합해 60~70곳으로 추산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영국은 재건축 연한이 130~140년, 프랑스와 독일도 80년이 된다. 한국이 30년으로 책정한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라며 “조선시대 목조로 지은 집들도 수명이 200년 이상인데 현대 최첨단 과학 공법을 동원해 지은 아파트를 30년 뒤 허무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재건축을 이용한 자산가치 상승이 아닌 리모델링을 통한 주거안정 차원의 주택 정책을 적극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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