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준 타쿠미곤 셰프 겸 일본요리연구회 한국지부장 <사진=유경아 기자>

[이뉴스투데이 유경아 기자] 참치 회에서 회색 빛깔이 돈다. 고등어 회는 분명 ‘날 것’인데 삶은 것 같은 식감이 난다. 냉장과 냉동, 상온을 오간 ‘숙성 회’이기 때문이다.

권오준 일본요리연구회 한국지부장은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에서 일식 레스토랑 ‘타쿠미곤’을 운영 중이다. 일본 사단법인 일본요리연구회는 ‘월간 일본요리’를 통해 정통 일본 초밥(스시) 등을 소개하고, 레시피도 공개하고 있다. 일본요리연구회에 등록된 셰프 중 한국인은 그 뿐이다.

4일 오후 ‘타쿠미곤’에서 만난 권 셰프의 첫 인상은 번쩍이는 사시미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눈매로 기자를 제압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코스 요리가 시작되면서 앞에 나온 음식에 대해 설명하는 그의 표정은 푸근한 ‘아빠의 미소’로 바뀌었다.

“참치와 농어, 관자입니다. 숙성한 생선이에요. 색이 좀 맛이 갔죠? 그래도 맛은 정말 좋습니다”라며 웃으며 농담까지 건네던 그의 말을 듣고 숙성 생선을 처음으로 먹어봤다. ‘녹았다’. 입에 넣어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금방 목으로 넘어갔다.

'타쿠미곤'의 숙성 횟감으로 만든 스시 <사진=유경아 기자>

권 셰프는 일본에서 근대화되기 전의 정통 에도마에 스시를 만드는 국내 유일 ‘장인’이다. 숙성 스시는 짧게는 1~2일부터 길게는 6개월까지 숙성한 횟감을 사용하는 것이다.

권 셰프는 “숙성 생선은 활어보다 독성이 적고, 자체적으로 품고 있는 영양이 활어보다 더 많다”면서 “냉장과 냉동, 상온을 오가는 동안 불포화지방산이 농축될 뿐만 아니라 글루타민산, 아미노산 등이 풍부해져서 흔히 ‘감칠 맛’이라고 부르는 맛이 최고 수준에 오른다”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에서 ‘숙성 스시’로 스시 카이세키 메뉴를 선보이는 셰프는 권 셰프가 유일하다. 지난 2010년 임피리얼 팰리스 서울의 일식당 ‘만요’ 총괄 셰프로 오기 전 권 셰프는 일본에서 약 120년 전통의 일식 레스토랑 ‘스시 쇼우사이토우’에서 17년간 에도마에 스시를 배웠다. ‘스시 쇼우사이토우’는 미쉐린 2스타를 받은 식당이다.

지금은 스시 장인이지만 권 셰프는 한때 ‘공무원’이었다. “경북 안동에서 공무원 생활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공무원’에 대한 회의감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일본으로 ‘스시’를 배우러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떠났는데, 그게 29살 때 였어요. 당시 결혼해 부인도 있었는데, 저를 믿고 일본으로 같이 가줬습니다.”

권오준 타쿠미곤 셰프가 숙성 스시를 만들어 선보이고 있다. <사진=유경아 기자>

그는 당시 부산에 갔다가 한 호텔에서 스시를 먹어본 후 ‘자신의 길’을 찾았다고 했다. 어떤 ‘깨달음’ 같은 것을 얻었다고 한 그는 ‘인터넷’ 등의 매체도 없던 30여년 전 무작정 일본으로 가 부딪혔다.

권 셰프가 가진 ‘요리 철학’에 대해 물었다. 요리를 하고 싶다는 ‘열정’으로 현재까지 오게 된 권 셰프가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저는 이 스시가 ‘생명에서 생명으로 전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살아있던 이 생선을 가지고 와서 공들여 숙성하고 맛있는 요리로 만들어 ‘타쿠미곤’을 찾아오신 ‘생명’에게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정성을 다해서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타쿠미곤'에서 선보이고 있는 숙성 스시 <사진=유경아 기자>

한국 외식업의 발전을 기대하는 그의 마지막 한 마디도 인상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우수한 맛과 서비스를 자랑하는 곳에만 부여되는 ‘미쉐린 가이드’에 대해 권 셰프는 ‘미쉐린 가이드 코리아’는 다소 아쉽다는 마음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내년엔 미쉐린 스타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은 기자에게 권 셰프는 “저는 그런 건 바라지 않아요. 미쉐린 스타 같은 것은 정말 정통성을 가지고 고객들에게 맛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누구나 찾아가서 부담 없이 요리를 먹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곳에 부여돼야 한다고 봐요. ‘미쉐린 코리아’는 그런 면에선 좀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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