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처럼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했다간 “물색없다”는 핀잔만 돌아올 법한 요즘이다. 왜인지는 굳이 설명하기도 번거롭다. 때문에 장장 열흘간의 연휴를 앞에 두고도 마음이 가볍지 않다.

그래도 어김없이 추석날 밤이면 보름달이 뜰 터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겠지. 기자도 마찬가지다. 올해는 무슨 소원을 빌어볼까.

우선 당장 발등의 불인 한반도 위기가 가라앉았으면 좋겠다. 일촉즉발의 사나운 기세로 상대를 위협하고 있는 북한 김정은과 미국의 트럼프가 냉정을 되찾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물론 보름달 보고 빈다고 해서 그 소원이 이루어지진 않겠지만…

두 번째 소원은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봤으면 하는 것이다, 특히 첫 번째 소원과 연관돼 병역의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상상해 본다. 이를테면 해외유학 중인 재벌 2세나 3세가 최근의 한반도 위기상황을 보고 유사시 입대하기 위해 귀국을 한다든지 하는…1967년 3차 중동전쟁이 터졌을 때 이스라엘 해외 유학생들이 대거 귀국했다는 식의 미담 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 최근 강남권에선 이민 상담을 하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는 둥의 얘기가 돌아다닌다. 유학 간 자녀를 불러들이기는커녕 여차하면 한국을 떠날 궁리를 하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입맛이 쓰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기자의 친구이기도 한 강우석 영화감독은 다른 사례를 보여준다. 그는 이태 전 가족회의 끝에 캐나다에 유학 중인 아들의 영주권 신청을 포기시켰다. “아들 녀석이 영주권을 받고 나면 병역도 피하고 싶어 하게 될까 걱정돼서”라는 게 그 이유였다. 강 감독은 “대한민국 국민들을 관객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어 온 아버지가 아들을 군대에 안 보내는 건 말이 안 된다”라는 논리로 가족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이번 위기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에 강 감독 같은 생각을 갖는 이들이 좀 늘어날 수 있을까?

세 번째 소원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내로남불’의 볼썽사나운 꼴 좀 그만 보게 해줬으면 싶다. ‘내로남불’이라는 용어의 창안자(?)는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다. 1996년 15대 총선 때 ‘의원 빼가기’ 논란이 일자 당시 신한국당의 박 대변인이 “내 여자관계는 로맨스고 남의 여자관계는 스캔들이라는 논리”라고 일갈했다. 이 말이 세월이 지나며 ‘내로남불’이라는, 보다 입에 착 감기는 사자성어(?)로 진화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내로남불의 양상도 함께 진화했다. 자사고, 외고 폐지 문제부터 문화계 블랙리스트, 댓글 공작 등 사회 곳곳에서 입장이 다른 사람들 간에 “내로남불 아니냐”는 드잡이가 벌어지고 있다. 그 드잡이를 지켜보자니 피로감이 느껴질 정도다. 누군가는 “내로남불을 하도 들었더니 ‘메론 환불해 주세요’를 ‘내로남불해 주세요’로 잘못 알아들었다”는 우스갯소리를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그러니 이번 명절 연휴 후에는 ‘내로남불’은 사라지고 ‘내 탓이오’나 ‘나부터 잘하자’ 소리를 더 자주 듣게 됐으면 좋겠다.

네 번째 소원은 ‘완장질’ 좀 그만 봤으면 하는 것이다. 작가 윤흥길이 소설 완장을 발표한 건 1983년이다. 그런데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소설 속 임종술은 여기저기서 활개를 젓고 다닌다.

지난 정권만 해도 금융권에선 모 인사의 완장질에 대한 원성이 자자했다. 그는 정권 출범과 동시에 “우리가 이 정권을 어떻게 세웠는데”라는 소리를 공공연히 하고 다니며 민간 금융회사의 인사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해 많은 금융인들의 원성을 샀다.

그런데 새 정권에서도 또 다른 임종술들이 곳곳에 출몰한다는 소문이다. 29일자 중앙일보 분수대 칼럼은 이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앞서의 임종술과 달리 이번 임종술들은 “세상 바뀐 것도 모르냐”라고 윽박지르는 모양이다.

완장질은 큰 권력을 가진 이들의 문제만도 아니다. 몇 해 전 사회면 기사에는 환경미화원들 사이에서의 비리 사건이 소개됐다. 환경미화원 조장이 조원들에게 담당 구역을 지정해 주면서 상납을 받은 사건이었다. 좋은 구역의 경우 때때로 주민들이 선물이나 사례금을 전하곤 하는데 이런 구역을 배정해 주는 조건으로 상납을 받았다는 것이다. 부디 이번 추석엔 다들 보름달을 보면서 자기 안의 임종술을 쫓아냈으면 하는 심정이다.

다섯 번째 소원은…이런, 위시 리스트가 너무 많아졌나? 사실 앞에 주절거린 내용은 다 희떠운 소리다. 내가 언제부터 나라 걱정을 그리 했다고…다 필요 없고 로또나 당첨됐으면 좋겠다. 아니, 그냥 당첨 말고 1등 당첨. 작년엔 로또 당첨 빌었더니 달랑 5000원 짜리 한 장 당첨됐기에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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