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1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난 4일 국회 연설문 중 ‘지대 개혁’에 관한 내용의 글자 수다. 전체 연설문의 5분의 1 정도에 해당된다. 현장에서는 원고에 없던 경제학 공식도 거론했으니 실제로는 이보다 조금 더 많은 분량이었다.

추 대표는 그 이후에도 당 최고위원회의 등에서 지대 개혁론을 역설하고 있다. 지대 개혁에 대한 그의 열의가 감지된다.

그런데 기자는 그 열정이 불안하다. 인류 역사가 말해주듯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고 그 길을 포장하는 이들은 ‘오도된 열정에 사로잡힌 사회공학도’들이었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그의 연설문 중 지대 개혁 부분을 다시 한 번 읽어봤다. ‘추 대표가 과연 우리 사회의 지대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우선 추 대표가 인용한 통계 수치가 미심쩍었다. 그는 “2016년 임금인상률은 겨우 3.3%인데 임대료는 3배가 넘는 10% 이상씩 올랐다”고 주장했다. 이를 근거로 ‘지대 개혁 없이는 임금이 아무리 올라도 근로자의 삶은 나아질 수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추 대표가 말한 임금인상률은 근로자 전체의 평균 임금인상률일 것이다. 그렇다면 임대료도 전국 평균을 놓고 비교해야 한다. 그런데 추 대표는 그렇게 비교한 것 같지 않다.

한국감정원이 매달 발표하는 부동산가격동향조사를 살펴보니 2015년 6월을 100으로 한 전국 평균 주택전세가격지수는 지난 8월 104.0으로 조사됐다. 2년 남짓 동안 4% 올랐다는 의미다. 지역별로는 서울 구로구(110.5)와 고양시 일산동구(112.7)만이 10% 넘는 상승률을 보였다.

월세 동향은 더 안정적이다. 지난 8월 중 전국 평균 월세통합가격지수는 99.9를 기록했고 지역별로도 대부분 100 언저리였다. 상승률 10%는커녕 5%를 넘는 곳도 없었다.

상가임대료는 어떨까. 2016년 4분기를 100으로 한 상업용 부동산 임대가격지수는 올 2분기에도 100으로 요지부동이었다. 지역별로 가장 많이 오른 곳은 대전의 원도심 지역(101.4)이었다.

지역을 더 세분화한 통계로는 지난 7월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서울 주요 상권 임대료 추이가 있다. 이에 따르면 용산구 이태원동의 경리단길의 임대료가 최근 2년간 10.16%로 가장 많이 뛰었다.

물론 감정원의 통계 수치가 실제와 어느 정도 괴리가 있을 수는 있다. 그렇다 해도 ‘10%가 넘는 임대료 상승’은 현실에 비해 지나치게 부풀려진 것으로 보인다.

가능성은 두 가지다. 추 대표가 국지적 현상을 무리하게 일반화 했거나, 아니면 한때 폭등했던 임대료가 이미 안정화 됐는데 안정되기 전의 수치를 인용한 것일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지대 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통계를 왜곡 인용했다는 의심을 살만 하다.

이밖에 추 대표의 연설 중 “지대로 얻는 토지불로소득은 연간 300조 원이 넘는다”거나 “인구의 1%가 개인토지의 55.2%를 소유하고 있고, 인구의 10%가 97.6%를 소유하고 있다”는 등의 통계도 그 개념과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특히 대규모 토지 소유자 중에는 농민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순히 이런 수치로 불로소득을 운운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추 대표의 연설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그가 헨리 조지를 인용한 부분이다. “생산력이 아무리 높아져도 지대가 함께 높아진다면 임금과 이자는 상승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정우 정책실장의 등장으로 조명을 받았던 헨리 조지를 10여년 만에 다시 소환한 것이다.

그러나 과연 19세기 미국인이었던 헨리 조지의 구상이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유효한 것인가는 시비의 여지가 있다. 언론인이기도 했던 헨리 조지는 평생을 두고 빈곤과 경제적 불평등 문제에 천착했다. ‘사회 전체로는 부가 증가하는데도 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가 그의 관심사였다.

그가 처음 지목한 경제적 불평등의 원인은 당시 철도산업 등에 존재하는 배타적 사업권이었다. 철도건설에 따른 경제적 이득은 관련 특권층과 기업들에게만 돌아가고 정작 철도건설에 동원된 노동자는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게 그의 문제 인식이었다.

이후 그는 시야를 넓혀 지대(rent) 문제에 눈을 돌렸다. 개발이 덜 된 캘리포니아에 비해 뉴욕의 빈민들이 더 빈곤하다는 점에 주목한 그는 그 원인을 지대에서 찾았다. 즉, 땅을 임차한 사업가는 총생산량에서 우선 지대부터 지불한 후 임금을 지불하므로 지대가 비싼 뉴욕 근로자들의 빈곤이 더 심해진다는 관점이었다.

그는 특히 토지는 공급의 총량이 정해져 있어 오직 수요에 의해서만 가격이 결정되고 수요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자연증가한다고 인식했다. 따라서 토지 소유자는 아무런 노력 없이도 땅값 상승에 따른 불로소득(unearned income)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교황 레오 13세에게 보낸 서한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편지에서 “노동 의욕을 가진 인간이 가난이라는 저주에 빠지는 것은 인간이 불경스럽게도 창조주의 자비로운 의도를 거스르면서 토지를 사유재산으로 만들고, 관대한 아버지께서 모든 인간을 위해 마련하신 토지에 배타적 소유권을 설정한 후 이를 극소수에게 부여하였기 때문입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역작인 ‘진보와 빈곤’(1879)에서 이런 모순에 대한 해결책으로 토지보유자에게 토지가치세(또는 지대조세)를 부과하고 대신 생산활동에 부과되는 소득세 법인세 등 여타의 세금을 철폐할 것을 주창했다. 토지세를 ‘단일세’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오늘날에도 적잖은 추종자(조지이스트)를 얻고 있다. 미국에서는 조지이스트들이 그의 사상을 실험하기 위해 앨라배마 주에 페어호프라는 소도시를 건설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이정우 정책실장을 비롯해 토지정의시민연대 같은 단체들이 헨리 조지의 추종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 토지에 대한 헨리 조지의 생각은 ‘땅은 조물주의 선물’이라는 창조론적 세계관과 19세기 말 미국의 경제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19세기 말은 이른바 도둑 남작(robber baron)으로 불리던 대기업들에 의한 독과점 폐해가 자심했던 시기다.

때문에 헨리 조지의 구상을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구현하려는 시도는 시대착오적 오류가 될 가능성이 있다. 우선 땅값이 수요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인식은 현실과 다르다. 실제의 토지시장에서는 국공유지의 매각, 토지 이용규제의 완화 등이 공급요인으로 작용하고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토지세로 모든 세금을 대체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또 토지 소유자가 아무런 노력 없이 불로소득을 누린다고 보는 시각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 국토부 통계를 보면 국내 1530여 만 명의 토지 소유자 중 70%가 50대 이상이다. 이 수치가 시사하는 것은 대부분의 토지 소유자들은 그 땅을 소유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땀을 투자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기자가 지난 8월3일자 ‘서장훈은 억울하다’ 제하의 칼럼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기자의 이런 딴죽에도 불구하고 추 대표가 지대 개혁의 고삐를 늦출 리는 없을 것이다. 또 과도한 지대 상승을 규제해야 한다는 데에는 기자도 당연히 동의한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것은 앞으로 추진될 지대 개혁이 우리 사회를 지옥으로 이끄는 일은 없도록 경계해 줄 것을 당부하기 위해서다. 추 대표 스스로 자신의 열정이 오도된 열정이 아님을 증명해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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