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실패할 권리를 지녔다. 그렇지만 실패에는 반성이라는 의무가 따라붙는다.”

일본 자동차회사 혼다의 창업주인 혼다 소이치로(1906~1991)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그는 마쓰시타 전기의 창업주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더불어 일본 경제계에선 ‘신’으로 불렸다.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이며, 크게는 일본이 기술강국이자 경제대국으로 크게 발돋음할 수 있도록 브랜드 가치를 높인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혼다가 자동차 제작에 첫발을 내딛은 것은 다른 메이커에 비해 늦은 1962년이었다. S500과 S360이 혼다자동차의 시작이다. 1972년 혼다 대표모델로 자리한 시빅의 등장으로 본격적인 승용차 메이커로 인정받게 되는 시발점이 됐고, 1976년 등장한 어코드는 대단한 인기를 누리며 전체 일본차의 대명사가 됐다.

현재 혼다는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으로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자동차회사로 성장했으며, 어코드와 시빅, CR-V 등이 세계를 누비고 있다.

혼다의 한국 현지법인인 혼다코리아는 2001년 일본 혼다의 한국법인인 ‘혼다모터사이클코리아 주식회사’로 출범해 2003년 자동차 사업 진출을 계기로 사명을 ‘혼다코리아 주식회사’로 변경했다.

혼다코리아는 올해 상반기에만 지난해 전체 실적의 80% 이상을 판매(5385대)하면서 작년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의 반사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올해 상승세를 이끈 차종은 단연 어코드다. 상반기까지 1000대 이상을 판매한 수입차 브랜드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라면 지난 2008년 수입차 판매 1위에 올랐을 당시 최다 판매 기록을 경신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그런데 얼마 전 큰 사달이 났다. 자동차 내부에 녹이 발견되면서 소비자들이 단단히 화가 난 것이다. 지난 4월 출시한 5세대 올 뉴 CR-V와 어코드에 대한 ‘부식 논란’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자동차 리콜센터와 YMCA-자동차안전센터 등에 접수된 내용 대부분이, 출고한 지 얼마 안 된 차량 내부 곳곳에서 녹이 발견됐다. 부식은 주로 운전석 운전대 및 대시보드 아래 고정을 위한 브라켓과 내부 철제 용접 부위 등에서 나타났다.

뉴 CR-V는 올해 들어 7월까지 국내에서 1000여대가 팔렸는데, YMCA 자동차안전센터에 접수된 것만 306건이나 된다. 8월에 팔린 차량 대수를 고려해도 25% 이상에서 부식이 발생했다. 10대 중 2대 이상에서 녹이 발생했다는 것은 쉽게 넘어갈 일은 아닌 듯하다. 자동차 제작이나 부품 관리 과정에서든 결함이 분명히 있었다는 얘기다. 어코드 역시 287건으로 적지 않은 수치다.

자동차 전문가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운송과정에서 해풍에 의해 발생한 부식이 아니라 이미 제작 과정에서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혼다코리아측은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 원인을 파악하고 있다”며 녹 제거를 하고, 방청제를 뿌려주는 미봉책에 불과한 대책들만 내놓고 있다. 녹이 발생한 부분에 대한 사과 한 마디도 없었다. 부식 차량 소유자들 사이에선 “녹이 발생한 사실을 알면서도 차량을 판매했을 것”이라는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현재 혼다측은 어쩌면 부식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안전과는 직접적인 문제가 없다는 데서 명분을 애써 찾고 있는 지도 모른다. 현행 법에선 자동차 성능과 연관이 없다면 리콜(시정명령)을 할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이다.

이번 부식사건이 운전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 아닌 단순한 상품성, 즉 품질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혼다측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차량을 구입한 소비자들이 취할 수 있는 것은 ‘혼다 불매 운동’과 같은 소극적인 방법밖에 없는 걸까. 이럴 경우에도 결국 신차가 아닌, 중고차 가격만 떨어질 것이 뻔하다. 이래저래 혼다차를 구입한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게 되는 셈이다.

만약 소송을 진행한다고 해도 시간과 비용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입장에선 결코 유리한 게임이 아니다. 안된 일이지만 지금으로선 방청 처리라도 해서 더 이상의 부식을 막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지도 모른다.

혼다측은 이제라도 논란이 확산되고 난 뒤에야 움직이는 늑장 대응을 한 것에 대해선 한국 소비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 그리고 “교환·환불 이외의 방법은 없다”며 혼다측에 보상안을 요구한 소비자들에게도 땜질식 처방이 아닌 구체적인 대답을 내놔야 한다.

만약 혼다 소이치로 회장이 살아 있다면 ‘자기반성’을 모르고 있는 혼다코리아에 어떤 얘기를 했을까.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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