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세정 기자] 8월 31일 오전 10시 10분. 기아자동차의 통상임금 소송 1심 선고가 내려졌다. 결과는 근로자들의 승리.

이번 소송은 2011년 10월 기아차 생산직 근로자 2만7424명이 연 750%에 달하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고 각종 수당을 다시 계산해 지급하라고 주장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첫 소송이 제기된 지 6년 만에 나온 판결이다. 이날 재판부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으로 인정된다"는 해석을 내렸다.

여기까지는 기아차에게 가벼운 '잽'이었다. 과거 판례로 미뤄볼 때 재판부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보리라는 것은 이미 예상해왔기 때문이다.

기아차가 기대한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이었다. 재판부가 신의칙을 인정할 경우, 과거 미지급된 수당을 소급 지급할 의무는 면제되므로 당장의 재무적 부담은 면할 수 있는 것.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3년 판례를 통해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되지만, 회사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발생시킬 경우 신의칙에 따라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하지만 기아차의 희망은 곧 낙담으로 바뀌었다. 재판부가 "기아차는 당기순이익을 냈고 재정적인 경영환경이 나쁘지 않다"며 "피고(기아차 측)가 주장하는 신의칙 위반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론을 낸 것이다. 특히 재판부는 기아차에 "미지급분 임금 지급 시 입게 될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 초래' 주장은 섣부른 단정"이라고 잘라 말했다.

재판부의 이런 판단은 기아차에게 조 단위의 임금 부담을 떠안기는 묵직한 '카운터 펀치'였다.

이번 재판의 결정 금액은 4223억원이지만, 이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3년 치에 대한 것일 뿐이다. 노조는 이미 2011년 말부터 2014년 말까지의 통상임금에 대해 2차 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다. 특히 오는 10월에는 2015년 이후 최근까지에 대한 3차 소송도 제기할 계획이다. 1심 결과를 기준으로 추산해 보면 기아차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1조 원에 달한다.

물론 아직 1심 판결인 만큼, 기아차가 당장 1조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출’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회계상으로는 판결 시점부터 이 예상비용을 충당금 형태로 반영해야 한다. 기아차는 올 들어 분기당 약 4000억원 정도의 영업손실을 내고 있다. 따라서 3분기부터는 적자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재판부가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특히 아쉬운 대목이다. 기아차가 그동안 꾸준히 영업이익을 내온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속히 바뀌었다.

기아차는 최근 글로벌 시장의 전반적인 침체에 따른 부진, 중국의 사드 보복 여파로 극심한 판매 급감 등을 겪었다. 올 상반기 중국 판매량은 55% 쪼그라들었고 전체 영업이익 역시 44% 감소하는 등 초라한 실적을 냈다. 기아차는 2010년 이후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며 하향세를 탔다.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형제 기업인 현대차의 경우, 사드 보복으로 자금난에 시달려 협력업체에 대금을 지급하지 못해 공장 가동을 멈추기도 했다. 기아차에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주요 시장 중 하나인 미국에서도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기아차는 모델 노후화 등으로 인해 올 상반기 판매가 전년보다 10% 줄었다. 특히 미국과의 한·미 FTA 재협상 결과에 따라 현재의 무관세 원칙이 폐지되면, 가격 경쟁력 하락이 불가피하다.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면 대미 수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기아차로부터 촉발된 통상임금 소송의 파장이 국내 전 산업계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115개의 회사에서 통상임금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다. 법원이 이번 소송에서 노조의 손을 들어준 만큼, 더 많은 회사 노조들이 통상임금과 관련해 줄소송을 낼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기아차, 나아가 재계의 입장에서 이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항소심이다. 항소심에서도 역시 핵심 쟁점은 신의칙을 배제할 지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영 상태를 단기적 관점에서 판단한 1심과 달리 2심 재판부는 절체절명의 경영환경에 대해 보다 폭 넓은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게 기아차 경영진의 절박한 하소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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