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에 개봉한 미국 영화 ‘이유없는 반항’ (Rebel Without A Cause)이 불현듯 뇌리를 스친다.

이 영화에 등장한 주인공 짐(제임스 딘 역)은  여 주인공 주디(나탈리 우드)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주디 남자친구 버즈는 연적(戀敵)이 등장하자 짐에 대해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한다.

결국 딘과 버즈는 주디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결판을 위한 시합을 제안한다. 이들 둘은 각자의 차를 타고 절벽을 향해 달리다 먼저 차에서 뛰어내린 사람이 지는 게임을 하기로 한다. 먼저 뛰어내린 자는 치킨(chicken:겁쟁이)이 되는 이른바 ‘치킨 게임’(chicken game)이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던가. 두 사람이 상대방 담력을 떠보기 위해 자동차로 게임을 벌이다 버즈는 옷이 차문에 걸려 뛰어내리지 못하고 절벽으로 추락해 결국 목숨을 잃는다.
‘이유없는 반항’은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흥미로운 소재가 아닐 수 없다. 정보경제학에서 다루는 ‘정보의 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y)에 따른 역(逆)선택(adverse selection)’의 대표적 사례이기 때문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 애컬로프 美 UC버클리대(大) 교수가 선보인 이론이다. 양측이 갖고 있는 정보에 차이가 있을 때 정보의 비(非)대칭성이 발생한다는 얘기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발생하면 비효율이 생기게 마련이다.

역선택은 정보의 불균형으로 자신에게 불리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을 뜻한다. 버즈가 딘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꿰뚫었다면 죽음에 이르는 참변을 모면하지 않았겠는가.

올해 남북 분단 64주년을 맞는 한반도 역시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매달려 온 북한 김정은 정권은 최근 미국령(領) 괌 주변에 미사일을 발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에 질세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화염과 분노’, ‘군사행동 장전완료’ 등 섬뜩한 표현을 쏟아내며 선제 타격을 비롯한 모든 선택지를 갖고 있다고 엄포를 놓고 있지 않는가.

북한과 미국이 마치 같은 궤도에서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열차와 같은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전술학적 관점에서 보면 핵무기는 전쟁 억지력(war deterrence) 효과가 있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핵무기를 갖고 있는 나라는 핵으로 다른 나라를 공격해서도, 또한 다른 나라로부터 공격을 받아서도 안 된다는 얘기다.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된 상황에서 미국과 북한이 ‘한반도 전쟁불사론’까지 거론하는 상황은 자주국인 한국의 의사를 무시하고 한국민을 볼모로 삼기에 충분하다. 이는 한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북한 김정은과 트럼프 대통령이 ‘미치광이 이론’(Madman Theory)의 달인이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들은 상대가 자신을 미치광이로 여겨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정보의 비대칭성이라는 함정에 빠진 미국과 북한이 펼치는 위험한 도박이 상대의 양보가 아닌 자칫 공멸로 치달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북한이 군사공격을 할 경우 반격을 공격 원점에 국한하는 이른바 ‘맞춤형 공격’으로 맞대응해 한반도에서 전면전(戰) 가능성은 없다고 애써 강조한다.

그러나 미국 설명처럼 적의 공격에 상응한 ‘정확한 반격’이 가능할까.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정보의 비대칭성 속에서 자칫 미국과 북한은 전면전으로 치닫는 역선택을 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북한은 핵실험을 이미 5차례나 실시해 어쩌면 돌아올 수 없는 ‘핵(核) 루비콘강’을 건넜을 지도 모를 일이다. 북한에게 핵무기는 전면전을 각오하고라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생명줄이나 진배없다.

만일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면전이 발생하면 수 천만명에 달하는 국민이 희생되는 우리 민족의 대참사가 될 것이다.  또한 ‘한강의 기적’이라는 세계적 찬사를 들으며 일궈낸 대한민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은 전쟁으로 한 줌의 잿더미가 된다.

이와 함께 북한 핵시설 파괴에 따른 대규모 방사능 유출로 한반도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지로 전락한다.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한(韓)민족이 공멸할 수도 있는 중차대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8.15경축사를 통해 한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천명한 것은 박수칠 만 일이다.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으로 남북한이 1992년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사실상 휴지조각이 됐다. 북한 핵 포기를 위한 외교적 노력이 만일 실패로 끝날 경우 우리가 꺼낼 수 있는 카드는 미국이 주장하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행동이 아니다. 한반도 비핵화가 공염불이 돼 남쪽만의 비핵화가 된 상황을 타개하려면 전술핵을 한국에 다시 배치하는 ‘핵 균형’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이미 실현이 불가능한 우선 순위만 고집하고 차선을 외면하는 교조주의 (敎條主義)적 자세는 전형적인 아마추어리즘이다.

이와 함께 남북한이 상호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남북 정상간 핫라인(hot line)을 설치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핫라인은 예상치 못한 사고나 오해에 따른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긴급 비상용 직통전화다. 핫라인은 냉전시대를 맞아 미국 백악관과 러시아 크렘린이 수 십년전에 개통하는 등 ‘정보의 비대칭성’을 없애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특히 적대관계에 있는 나라일수록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핫라인이라는 비상연락망을 갖추는 게 상식이다.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관계인 중국과 대만이 2015년 12월말 정상회담에서 핫라인을 공식 개통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과 대만이 민족적 동질감을 고취하기 위해 주판알을 튕기지 않고 정상회담을 정례화 하는 모습은 우리로서는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비해 남북한은 핫라인이 없어 정보 부족과 정보왜곡이 심각해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비대칭에 빠지기 십상이다. 이러다 보니 양측이 상호간 뼈 속 깊은 불신을 이어가고 있지 않는가.

남북한이 북핵 위협에 맞서 벼랑 끝을 향해 달리는 무모함 보다는 냉정을 되찾고 현실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다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자세로 남북한 상호존중과 소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문대통령은 남북한간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가능한 모든 카드를 동원하는 시대적 사명을 안고 있다. 이를 위해 문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평양에서 남북한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도 금기시 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눈앞으로 성큼 다가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편집국 부국장겸 생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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