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소리 좀 하지 마요. 내가 어디 가서 건물을 훔쳐 온 것도 아니고…내 인생 30년을 농구에 바쳐서 얻은 거예요.”

농구선수 출신 연예인 서장훈이 ‘아는 형님’이라는 TV프로에서 한 얘기다. 다른 출연자들이 그를 두고 “평생 일 안 해도 되는 건물주”라는 식으로 놀려대자 이렇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물론 양쪽 다 웃자고 한 얘기지 심각하고 진지한 언쟁은 아니었다. 그래도 ‘인생 30년을 바쳤다’는 그의 한 마디는 귀에 꽂혔다.

정부의 ‘8.2 부동산 대책’과 ‘세제 개편안’을 다룬 기사들을 읽다보니 서 선수의 하소연(?)이 다시 귓전에 들리는 듯 했다.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보유세 강화가 빠진 점을 비판하는 기사가 꽤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비판의 근저에는 ‘임대소득=불로소득’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즉, 가진 자들이 땀 흘리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임대 목적으로 주택을 사들이는 것이 집값 상승의 큰 요인이라는 인식이다. 따라서 보유세를 강화하면 이런 목적의 주택 수요가 줄어들 테니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실제로 경실련은 2일 발표한 논평에서 “근본적으로 불로소득을 환수하기 위해서는 보유세 강화가 함께 실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인식과 논리는 과연 옳은 것일까.

임대소득을 불로소득이라 여기며 백안시하는 인식은 그 기원이 꽤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작은 정부와 자유시장의 주창자였던 애덤 스미스조차도 임대소득에 대해서만큼은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그는 국부론에서 지대(Ground-rent)를 ‘주인이 아무런 노력도 없이 얻는 소득(enjoy without any care or attention of his own)’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과세는 경제에 아무 해도 끼치지 않으며 이러한 세금이 가장 좋은 세금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그도 보유세를 주장한 것은 아니다.)

애덤 스미스의 이런 인식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토지 소유 시스템을 전제로 한 것이다. 당시는 말 그대로 세습 지주들이 대부분의 토지를 소유하고 대대로 불로소득을 향유하던 시대다. 그러나 시민혁명과 산업화를 거치며 토지 소유 시스템은 크게 달라졌다. 땀 흘려 번 돈으로 땅을 사들인 새로운 지주들이 탄생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1일 공개된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의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부자 중 69%는 첫 부동산을 구입할 때 ‘스스로 모은 자금’으로 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상속 및 증여에 의해 첫 부동산을 취득한 비중은 약 30%에 그쳤다. 부자 10명 가운데 7명은 서장훈 선수처럼 ‘자력으로’ 부동산을 보유하게 됐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런데도 무작정 임대소득=불로소득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공정치 못한 처사일 수 있다.

또 보유세를 강화하면 주택가격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논리도 현실에서 실제로 그리 될지, 다른 부작용을 야기하진 않을 지를 보다 신중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모든 종류의 세금은 타인에게 전가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법인세를 인상할 경우 기업은 제품 가격 인상, 납품 단가인하, 인건비 절감 등의 방법으로 늘어난 세금을 벌충하려 들게 마련이다. 이는 소비자, 납품업체, 근로자에게 세금을 전가하는 것이다.

보유세도 마찬가지여서 어떤 형태로든 세입자에게 그 부담이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이병태 KAIST 교수는 이를 ‘부자들의 자기소득 결정권’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는데 그게 시장의 냉정하고도 솔직한 현실이다. 그 현실이 못마땅하다면 세금 전가를 막을 수 있도록 임대차 계약제도 전반에 걸쳐 보다 정치한 개선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기자는 이번에 정부가 보유세 강화를 유보한 결정을 지지한다. 앞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다주택자 보유세 논란에 대해 “이번 대책을 시행한 이후에 시장의 변화를 면밀히 보고서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부디 앞으로도 김 장관의 공언처럼 시장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는 신중한 결정이 내려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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