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박진우 학생 페이스북>

‘헬조선’ 문제를 두고 대학교수들 사이에 벌어진 설전에 대학생이 가세해 눈길을 모으고 있다.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재학 중인 박진우 학생이 주인공이다. 그가 올린 글은 반나절 만에 900여 명이 좋아요를 누르고 200여 명이 공유하는 등 네티즌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다.

발단은 지난 16일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젊은이들에게 가슴에서 호소합니다’란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그는 이 글에서 “이 땅이 헬조선이라고 할 때, 이 땅이 살만한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욕할 때, 한 번이라도 당신의 조부모와 부모를 바라보고 그런 이야기를 해 주기 바란다”고 질책했다. 또 “사람값이 싸다고 투덜대기 전에 누구 한 번 월급 줘보고 그런 철없는 소리를 하고, 월급보다 더 가치 있는 직원이라고 증명하라”는 당부도 했다.

이틀 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5천년 역사 최고 행복세대의 오만’이라는 글을 올려 이 교수를 비판했다. 자신을 이 교수와 같은 베이비부머 세대라고 소개한 박 교수는 “우리 세대 중 상당수(이 땅에서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를 누리는 사람들)는 한민족 5000년 역사에서 가장 행복한 세대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오늘날 젊은이들이 유복한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은 부모 세대가 5000년 역사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냈기에 받는 반사이익일 뿐 그들의 삶은 온통 불투명하고 우울하다. 도통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젊은이들의 미래를 위해 마땅히 해줄 게 없다면 가만히 입이나 다물고 있는 게 예의”라며 “징징댄다고 타박하는 것은 오만 중의 오만”이라고 글을 맺었다.

하루 뒤인 지난 19일 이번엔 박진우 학생이 ‘박찬운 교수님께 올리는 어느 젊은 후배의 생각’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이병태 교수의 글에 감명을 받은 대학생 중 하나”라고 자신을 소개한 후 경제이론과 통계수치를 제시하며 박 교수가 올린 글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는 박 교수가 황금기라 칭한 1980년대 한국의 고용률은 50% 초중반에 불과했으나 2010년대 들어 60% 후반까지 상승한 점을 들어 우리 경제가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해 왔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특히 “(박 교수처럼) ‘꽤 괜찮은 대학을 나온’ 청년에게는 그 시기가 황금기였을지 모르나 다수의 기층 민중들에겐 전혀 그렇지 않은 시대였다”며 내가 느꼈던 행복을 타인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판하는 것은 ‘폭력’이라고 일갈했다.

다음은 박진우 학생의 글 전문

교수님, 저는 교수님의 평정심을 깨트렸다는 카이스트 이병태 (Byungtae Lee) 교수님의 ‘글 하나’를 읽고 많은 감명을 받은 한 명의 대학생입니다. 교수님께서 졸업하신, 그리고 현재 교편을 잡고 계신 한양대학교에 재학 중인 30년 후배이자 제자이기도 하지요. 교수님의 수업을 직접들은 적도, 만나 뵌 적도 없으며, 이 글을 아마도 고명하신 교수님께서 읽어주실 리도 없겠으나 생각이 복잡하여 몇 자 남깁니다.

교수님께서는 베이비붐 세대가 역사상 가장 행복한 황금기를 보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행복이란 너무나도 주관적이어서 어떤 이의 행복을 그 사람이 속한 세대만으로 재단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감히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단적인 예로 교수님께서 황금기라 칭하신 1980년대, 한국의 고용률은 50% 초중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2010년대에 들어 60% 후반까지 뛰어 올랐지요. 그 사이 증가한 생산가능인구까지 고려하면 우리 경제는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동안 시민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해 왔음이 자명합니다.

노동소득분배율 또한 경기변동과 그에 따른 자영업자 급증으로 부침이 있었으나, 50% 근저에 머무르던 게 60% 후반까지 상승했습니다. 당시 교수님처럼 꽤 괜찮은 대학을 나온 청년들에겐 그 시기가 황금기였을지 모릅니다. 낮은 대학 진학률로 인해, 교수님과 같은 지식 노동자의 공급이 수요에 비해 월등히 희소했으니 말이죠. 그러나 다수의 기층 민중들에겐 전혀 해당하지 않았던 얘기입니다. 내가 느꼈던 행복을 타인도 느꼈으리라 으레 짐작하고, 심지어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는 주장을 ‘잘못된 것’이라 말한다면 폭력이 아닐는지요.

객관적 지표는 지금이 그 때보다 못하다는 어떠한 결과도 보여주지 못합니다. 정녕 현대 한국 사회가 헬조선이라면, 2017년을 살고 있는 시민들을 타임머신에 태워 80년대로 보내는 상상을 해봅시다. 대기오염과, 지저분한 한강 변과, 지금과는 비교조차 어려운 낮은 주택보급률과, 정보통신의 제한을 모두 감내할 수 있을까요. 기억은 늘 좋은 쪽으로 편집되고 편향되기 마련입니다만, 우리는 향수를 극복하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과거보다 더 나은 삶을 누리는 원리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선배 세대가 근면히 일하고 저축하여 우리 세대에 물질적 기반, 즉 ‘자본’을 남겨주었기 때문입니다. 신생독립국 한국은 그야말로 노동과 토지라는 ‘본원적 생산요소’만이 존재하는 빈곤한 사회였습니다. 선배 세대는 척박한 터전에서 본원적 요소만으로 재화를 생산하고, 다시 그 재화를 저축하여 더 많은 생산을 위한 ‘자본’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으며 반성할 것이 있다는 말입니까. 오히려 근면과 저축의 정신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가진 것이라곤 맨손 밖에 없는 로빈슨 크루스는 열심히 사냥해 물고기를 저축하고, 저축해둔 물고기로 며칠을 연명하며 낚싯대를 만들어냅니다. 낚싯대가 완성되면 더 많은 물고기를 잡지요. 다시 그 일부를 저축해두고 좀 더 오랜 시간을 거쳐 카누를 완성하면, 더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낚싯대와 카누는 바로 크루스 경제의 ‘자본’입니다. 이제 크루스의 자손들은 물려받은 자본을 이용하여 크루스보다 높은 수준의 풍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 더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면, 다음 세대는 더 나은 삶을 영위하겠지요.

재가 굳이 예화까지 들어가며 이렇게 선배 세대의 공(功)을 역설하는 이유는 단지 교수님께서 선배 세대를 과도하게 평가절하 하신다고 생각해서만은 아닙니다. 교수님께서 ‘경쟁과 성장’이라는 자본주의의 운영원리가 오늘날 한국 사회의 문제를 야기한 것처럼 얘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언컨대 사실이 아닙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이 어려운 이유는 역설적으로 경쟁을 막고, 그래서 성장을 틀어막았기 때문입니다.

미국 노동자들의 처우가 한국보다 좋은 이유는 단순합니다. 미국의 노동자들이 월마트와 맥도날드 같은 안정적이고 대형화된 기업에서 일하는 반면, 한국의 노동자들에겐 이러한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와 같은 일자리가 부족한 이유는 소위 ‘골목상권 보호’라는 명분 하에 경쟁을 통한 자본의 대규모화를 막아왔기 때문입니다. 골목가게 100개를 합친다 하여 이마트가 만들어내는 MD, 회계, 재무, 인사, 마케팅, 물류관리, 점포개발, 시스템통합과 같은 고급 일자리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이마트에서 일하는 계산원과 청소 노동자 등의 임시직조차 골목가게의 그것보단 ‘훨씬’ 질 좋은 일자리입니다.

제조업 중심 경제가 한계에 다다른 지금, 서비스업과 농업 등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해야 할 부문의 경쟁을 막아 놓은 규제들이 저성장과 일자리 부족의 원흉입니다. 굳이 선배 세대로서 같은 선배 세대에 반성하라는 일갈을 하시겠다면, 이처럼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가 제공되는 것을 막아온 정치권에 하심이 옳다고 감히 조언 드립니다. 어떠한 지위도 없는 저의 주장은 파급력이 적지만, 고명하신 교수님의 일갈은 세상이 새겨들을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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