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늦어버린 발표다. 그나마 그 내용도 총체적으로 잘못됐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잔뜩 뜸을 들이다 12일 오후에 발표한 ‘국민의당 대선조작 사건 사과문’을 두고 하는 얘기다.

우선 사과의 상대방이 잘못됐다. 안 전 대표는 국민들에게 먼저 사과했다. 이어 정치인들에게 사과했다. 마지막으로 ‘당사자’에게 사과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당사자’가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이번 국민의당 대선 조작 사건의 1차 피해자는 문준용 씨라는 사실이다. 2차적으로는 준용 씨의 부모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다. 안 전 대표는 이 부분에 대해 대충 얼버무리고 갔다. ‘당사자’라고 표현할 게 아니라 분명하게 피해자를 적시하고 정중하게 사과했어야 했다.

정치인들에 대한 사과는 어리둥절하기까지 하다. ‘선거 과정에서 묵묵히 헌신해주신 당원 여러분, 동료 정치인들께 사과드린다’고 했는데, 이는 문맥상 국민의당 소속 정치인들에 대한 사과다. 국민의당 대선 조작 사건의 1차, 2차 피해자가 문준용 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라고 한다면 3차 피해자는 더불어민주당이다. 그런데 안 전 대표는 생뚱맞게 국민의당 정치인들에게 사과를 했다.

‘당사자’라는 표현과 ‘정치인에 대한 사과’를 종합하면 안 전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아들 준용 씨,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에 대해서는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걸 드러내고 있다. 증오의 정치가 계속되고 있다.

사과문을 발표한 시기는 여전히 문제다.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이 스스로 조작사건을 실토한 그날 사과를 했어야 했다. 안 전 대표는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했지만, 적어도 박 비대위원장의 기자회견으로 ‘국민의당이 대선 과정에서 녹취록을 조작했다’는 사실은 이미 그 시점에 기정사실이 됐다. 검찰 수사를 기다린다는 이야기는 안 대표 본인은 이 문제에 관련되지 않았음을 주장하기 위한 복선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비겁하고 무책임한 태도다.

나아가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운운한 부분도 거슬린다. 이는 ‘법적인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말로 들린다. 물론 안 전 대표가 이번 조작사건의 당사자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전말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남아 있는 의혹도 많다. 국민의당 공명선거추진단의 이용주 단장과 김성호 수석부단장, 김인원 부단장에 대한 수사도 끝나지 않았다. 안 전 대표에게 법적인 책임이 있는지 여부는 검찰 수사가 끝나봐야 안다. 하지만 안 전 대표는 스스로 면죄부를 발행했다. 이건 사과문이 아니다.

또한 '어떻게'가 빠졌다. 한발 물러서서 법적인 책임을 제외하고 정치적, 도의적 책임 부분만 놓고 봐도 대체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지 전혀 내용이 없다.

안 전 대표의 사과는 시기도, 방법도, 내용도 모두 잘못됐다. 이건 사과문이 아니라 ‘자기 변명’에 불과하다.

다시 한 번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 당시 이회창 전 총재의 발언을 들려준다.

"대선 후보이자 최종 책임자였던 제가 처벌받아야 하며, 제가 모든 짐을 짊어지고 감옥에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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