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본 미국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Enemy of State)’가 문득 떠오른다. 이 영화에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이탈리아계 범죄조직 마피아 일당과 미국 정보기관 국가안보국(NSA) 요원들 간의 총격전이 벌어져 양측이 떼죽음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NSA는 민간인 통신 감청법안에 반대한 국회의원을 자기 요원들이 암살한 장면을 담은 컴퓨터 디스켓을 마피아로부터 얻으려 했다.

그러나 마피아 일당은 NSA가 자신들을 해치러 온 것으로 오해하고 총을 난사했다. 양측은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서로 총격을 가해 비명횡사한 것이다.

첩보 스릴러인 이 작품은 정보를 독점해 사회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권력 ‘빅 브러더’(Big Brother)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정보경제학 관점에서 살펴보면 ‘정보의 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y)에 따른 역(逆)선택(adverse selection)’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 애컬로프 美 UC버클리대(大) 교수가 선보인 경제학 이론이다. 양측이 갖고 있는 정보에 차이가 있을 때 정보의 비 대칭성이 발생한다는 얘기다.

역(逆)선택은 정보의 불균형으로 자신에게 불리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마피아와 NSA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처음부터 정확히 파악했다면 참변을 모면하지  않았겠는가.

기업도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기업이 소비자에게 공개하는 정보와 소비자가 갖고 있는 정보에는 비대칭성이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정확한 기업 정보가 필요하지만 시장에는 기업 입맛에 맞는 정보가 쏟아져 나와 투자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불완전한 정보에 따른 시장실패(market failure)가 비일비재하다.

최근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을 둘러싼 구설은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는 데 소홀히 한 결과가 어떠한 지를 웅변해 주고도 남는다.

조양래 회장이 즐겨 타는 승용차에 한국타이어 제품이 아닌 프랑스 업체 미쉐린의 타이어가 장착됐기 때문이다. 한국타이어 수장이 해외 경쟁업체 제품을 쓰고 있는 셈이다. 마치 국산 자동차업체 총수가 자사 차량이 아닌 수입 자동차를 애용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는 기업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혹자는 그까짓 타이어가 뭐 그리 대수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완성차 업체 관점에서는 타이어가 일개 부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이어업체에게 타이어는 완성제품이다.

타이어업체 총수가 자사 제품이 아닌 외국산에 눈을 돌리면 소비자들은 총수가 자사 타이어 제품의 완성도와 안전도에 자신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까.

조 회장은 미쉐린 타이어 논란으로 자사 제품에 대한 고객의 브랜드 충성도(brand loyalty)에 큰 타격을 줬고 회사 경쟁력도 훼손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팔순을 넘어선 조 회장은 평소 언론과의 접촉이 거의 없어 ‘은둔형 최고경영자(CEO)’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제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기업 총수가 외부와의 원활한 소통을 거부한 채 ‘신비주의’나 ‘비밀주의’로 비춰지는 폐쇄적인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4차 산업혁명은 인터넷, 통신기술이 발달해 사람, 데이터, 사물 등 모든 것이 그물망같이 촘촘하게 엮인 ‘초(超)연결사회’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초연결사회를 맞아 기업 총수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음은 불을 보듯 뻔하다. 소통을 등한시 하는 리더십은 머지않아 박물관 한 곳을 차지하는 처량한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타이어호(號) 조타수인 조 회장은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회장의 리더십을 반면교사로 삼아도 좋을 듯싶다. 프랑스 자동차업체 르노와 일본 닛산·미쓰비시 자동차를 총괄하는 곤 회장은 ‘세븐 일레븐’(seven eleven)이라는 별명이 있다. 이 별명은 마치 편의점을 연상케 하지만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한다고 해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세븐일레븐에는 다른 뜻도 담겨있다. 곤 회장은 24시간 열려 있는 편의점처럼 전화 이메일 등 소통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임직원은 물론 언론 등과 소통했다. 르노·닛산이 지난 5월 판매량 기준으로 세계 3위 자리를 거머쥘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곤 회장의 ‘광폭 소통’이 한몫을 톡톡히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조 회장이 곤 회장처럼 24시간 소통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외부와의 소통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을 맞아 조 회장이 커뮤니케이션을 가로막는 장벽을 뛰어 넘어 변화와 혁신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신비주의 뒤에 숨은 은둔자’라는 비아냥을 언제까지 듣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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