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합당한 주권에 의거하여, 또한 적법한 국제 절차에 따라 로케트(굳이 ICBM이라고 하진 않겠다)의 발사에 성공하였음을 민족의 일원으로서 경축한다. 핵의 보유는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항하는 약소국의 가장 효율적이며 거의 유일한 방법임을 인지할 때, 우리 배달족이 4300년 만에 외세에 대항하는 자주적 태세를 갖추었음을 또한 기뻐하며, 대한민국의 핵 주권에 따른 핵보유와 장거리 미사일의 보유를 염원한다.’

독자 중 이 글귀가 눈에 익으신 분들이 계신지 모르겠다.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가수 신해철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던 ‘경축’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2009년 4월 북한이 장거리 로켓 광명성 2호를 발사했을 때였다.

북한의 ‘ICBM 시험 발사 성공’ 발표를 접하고 당시의 기억이 소환됐다. 신 씨가 지금 지하에서 축배를 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과 함께. 대한민국은 아니지만 북한이 핵과 장거리 미사일을 갖게 됐으니 그의 ‘염원’이 절반은 이뤄진 셈 아닌가.

당시 인터넷에선 신 씨의 글을 두고 격한 논쟁이 벌어졌다. 신 씨와 생각을 같이하는 네티즌이 의외로 많았다. DJ정권의 대북 지원이 핵 개발로 이어졌다는 공박에 한 네티즌은 “통일이 되면 어차피 우리가 핵보유국이 되는 것이니 ‘선견지명’ 아니냐”는 식으로 맞받아쳤다. 또는 “ICBM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을 겨냥한 무기”라며 “우리가 나서서 저지할 일이 아니다”라는 식의 견해도 있었다.

과연 그럴까. 북한이 ICBM을 실전 배치하게 된 상황을 상상해 보자. 북한이 “즉각 미군을 철수하지 않으면 미국 본토를 공격하겠다”고 나오면 미국 정부는 어떻게 나올까. 자국민의 피해를 감수하고라도 ‘혈맹’을 지키기 위해 북의 요구를 일축할까. 미국 정부가 그 정도로 대한민국을 혈맹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하여 미군 철수가 실현되고 나면 한반도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발적으로라도 남북 간에 무력 충돌이 빚어지면 전면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질 것이다. 북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 한 미국 등 제3국이 쉽게 개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평도 포격 때의 사례처럼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지금이야 우발적 충돌이 빚어져도 서로 자제가 되지만 그 고삐가 풀리면 예측 불가의 사태로 치닫을 수 있다.

‘북한의 핵보유는 결국 우리 민족의 핵보유’라거나 ‘통일이 되면 어차피 우리 민족의 핵무기’라는 식의 주장에도 동의하기가 어렵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원전 반대 투쟁에는 선봉에 설 것이다. 핵의 평화적 이용에는 극렬히 반대하면서 핵무기 보유는 지지한다? 기자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통일 후에도 ‘한반도 비핵화’는 계속 지켜나가야 할 보편적 가치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ICBM 개발은 더 이상 강 건너 불 보듯 할 문제가 아니다.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자주적 태세…’ 운운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경축할 일도 더더욱 아니다. 북한의 이번 ‘화성-14형’ 발사를 계기로 제2, 제3의 신해철이 나오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후일담; 신해철은 이 글로 인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입건됐다가 이듬해 1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신 씨가 술을 마신 뒤 충동적으로 해당 글을 1회 올린 점,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며 해당 글을 삭제한 점 등을 참작했다”고 처분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신 씨는 즉각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술자리의 건배사를 옮겨 적었다’는 게 어째서 ‘술김에 적었다’의 뉘앙스로 변하는지도 모르겠고 ‘문제의 문장을 삭제 해 줄 수 있느냐’라는 정중한 요청에 ‘볼 사람 다 봤는데 어려울 거 뭐 있냐’며 삭제한 게 왜 ‘반성의 표시’로 변하는지는 모르겠다”며 자신의 소신에 변함이 없음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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