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잠시 10년전으로 돌려보자.

미국 언론인 데이비드 하르사니는 2007년 ‘내니 스테이트(Nanny State:보모(保姆)국가)’라는 책을 발간했다. 내니 스테이트는 정부가 일반 국민을 마치 보모처럼 따라다니며 보호해주는 국가를 뜻한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박수칠 상황도 아니다. 내니 스테이트가 지나친 복지정책을 펴는 정부를 경멸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을 알게 되면 입맛이 씁쓸해진다.

국민 입장에서는 내니 스테이트가 ‘땡잡은’ 제도임에는 틀림없다. 윌리엄 헨리 비버리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교수처럼 정부가 돈을 마구 찍어 완전고용을 실현해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복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보모국가가 국민을 위한 최고선(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국민을 판단력과 자제능력이 부족한 어린아이처럼 취급해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앗아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보모국가는 또한 국가 재정건정성을 훼손시켜 경제적 위기를 초래한다.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이 ‘퍼주기식’ 과잉복지를 실시해 한 때 재정파탄을 맞이한 것은 보모국가의 ‘두얼굴’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는 일단 한 번 열리면 국가가 심각한 재정난에 빠져도, 극심한 경기침체에 허덕여도 쉽게 닫혀지지 않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로 돌아와 최근 한국 정치현실을 목도하면 내니 스테이트가 기시감(데자뷔:deja vu)처럼 떠오르는 것은 비단 기자만의 생각일까.

문재인 정부는 11조20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을 마련해 임기 내 공공부문에서 81만명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과감한 정책을 내놨다. 청년실업률이 올 들어 11.2%까지 치솟는 등 심각한 수준임을 감안하면 정부의 이번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고용 창출이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공정한 소득분배의 연결고리라는 점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일회성 추경으로 한번 뽑아놓은 공무원이 앞으로 30년간 재정에 계속 부담이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자유 시장경제 체제 하에서 고용창출의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다. 고용은 정부 예산이 아닌 기업의 투자로 이뤄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0년 넘도록 잠들어 있는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관(棺) 뚜껑을 열어 그에게 주요 경제정책을 자문하는 모습은 안타까운 일이다. ‘큰 정부’를 강조하는 케인지언 정책이 만능일 수는 없다.

정부는 부유층과 대기업이 잘 살면 그 부(富)가 하위층과 중소기업으로 이어지는  '트리클 다운 효과‘는 없다고 외친다. 그러나 중소기업이 국내 전체 기업체 수의 99%, 고용의 88%를 책임지는 현실에서 고용과 청년실업 원인을 모두 대기업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경제위기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대기업으로 향하기보다는 중소기업 일자리의 질적 수준 향상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중소기업은 착하지만 대기업은 나쁘다’는 언더도그마 프레임에서 벗어나 중소기업이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도 전형적인 아마추어리즘이다.

지난해 6월에 착공해 30% 가량 지어진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 6호기 건설을 중단하겠다는 것은 지금까지 쏟아부은 1조4000억원을 허공에 날리는 셈이다. 세수낭비도 이만한 게 없다.

정부는 원전 위험성과 미세먼지 등을 탈 원전의 이유로 들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2011년 3월 일본 동북부 지방을 강타한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지난해 9월 경주 대지진 이후 전국 원전의 50%가 몰린 경북 동해안을 염두에 둔 대목일 수도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은 지진이 아니라 지진 후 쓰나미(해일)로 발전기가 침수돼 벌어진 사고다. 쓰나미가 없는 일반 지진이었으면 후쿠시마 사태는 없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경주 지진과 연관 지을 수 없다는 논리다.

지진만으로 원전 사고가 발생한 것은 세계적으로 단 한 건도 없다. 이에 따라 영국이 최근 원전 증설을 추진하고 있고 탈 원전을 선언했던 대만도 원전 재가동을 발표했다. 일본 역시 원전 재가동을 시작하는 등 지금 세계에서 신규 원전 60기가 건설 중이다. 원전의 위험성만 강조한 한국정부의 터널 비전(tunnel vision)을 꼬집기에 충분하다.

친환경 재생에너지가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국내 전력 생산에서 30% 이상을 차지하는 원전을 등한시 한 채 전체 발전량의 1%에도 못미치는 태양광-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에 무게중심을 두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경제적 실익을 챙기기 보다는 인기에 영합하는 에너지 포퓰리즘이 아닐 수 없다.

선무당의 칼춤은 위험하다. 날카로운 칼끝이 잘못 겨눠지면 그 피해는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선무당의 위험한 칼춤놀이에 나라경제가 휘청거리지 않도록 치밀하고 냉철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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