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문재인 대통령과 장진호 전투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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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칼럼] 문재인 대통령과 장진호 전투의 인연
  • 임혁
  • 승인 2017.06.29 1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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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공식행사 첫날 ‘장진호 전투’가 네티즌들의 검색어 상위에 올랐다. 장진호 전투는 한국은 물론 미국의 전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전투다.

1950년 10월, 원산에 상륙한 미군 해병 1사단은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로 북진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임시 수도인 강계를 점령하기 위해서였다. 이때만 해도 종전이 머지않은 듯 했다.

그러나 11월 들어 중국이 한국전쟁에 본격 개입하면서 전세가 역전돼 장진호에 주둔한 미 해병 1사단은 중국인민지원군(중공군) 제9병단 12만 명에 포위되고 만다. 이에 미 태평양사령부는 흥남을 통해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포위를 뚫으려는 미군과 중공군 사이에 처절한 전투가 벌어진다.

11월 26일부터 12월 13일까지 벌어진 전투에서 미 해병 1사단은 전사상자 3,637명, 비전투사상자 3,657명의 피해를 입었다. 중공군은 이보다 훨씬 많은 전사 25,000여명, 부상 12,500여명의 막대한 병력 손실을 입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양측 모두 전투사상자 못지않게 비전투사상자 많았는데 그 대부분은 동상환자였다. 장진호 일대는 고도 1000미터의 산악지형으로 11월에 벌써 낮 기온 영하 20도, 밤 기온 영하 32도에 이르는 강추위가 엄습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맹추위로 수혈이나 진통제 사용조차 어려웠고 전투식량도 얼음덩어리여서 병사들이 심한 소화불량에 시달렸다고 한다.

사선을 넘나든 이 전투를 통해 미 해병1사단은 중공군의 남하를 지연시키는 한편 마침내 포위를 뚫고 흥남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계 전사에 진기록으로 남은 흥남 철수를 통해 군인 10만 명, 민간인 10만 명을 193척의 군함에 싣고 남쪽으로 탈출시킨다.

그 10만 명의 민간인 중에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도 섞여 있었고 그 아들이 대한민국의 국가 원수가 돼 오늘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은 것이니 이 또한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억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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