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탑골공원에서 어르신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뉴스투데이 김희일 기자]  # "월세보증금 500만원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중 국민연금이 긴급자금을 빌려준다는 소식을 듣고 자금을 급히 빌렸는데...! 어느덧 1년의 거치기간이 끝나 지난해부터 매달 연금액에서 10만원씩 차감해 갚다보니 밥 먹고 살기도 빠듯해요. 결국 아랫돌 빼어 윗돌 괴어놓듯 내 노후자금을 미리 댕겨 썼던 것이 후회되내요”

봉천동에 거주하는 이복순(67·여·가명)씨는 남편이 받는 국민연금 20만원과 부부의 기초연금 32만원 등 월 52만원정도로 가정 삶을 꾸려가고 있다. 이씨가 맞벌이 부부의 아기봐주기 등으로 푼돈을 벌지만 실질적으로 남편이 가끔 공사판에 나가 노가다를 통해 벌어오는 얼마의 돈이 그나마 어려운 가정형편에 숨통을 트게 하는 구실을 해왔다. 하지만, 남편이 1년 반 전 철골에 깔리는 사고를 당하면서 어렵게 10여년간 부어 수급 자격을 얻은 국민연금마저도 온전히 받지 못하게 된 형편이다. 부부는 5년간 매달 받는 연금에서 일부를 떼어 대출금부터 갚기로 했다.

이씨는 “국민연금 대출 덕분에 대부업체까지 찾지는 않았지만 계속되는 위기를 노후자금에서 메워야 하는 처지가 새삼 서글퍼진다”고 말했다.

23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이씨처럼 생활자금이 긴급하게 필요한 만60세 이상 국민연금 수급자에게 저금리로 의료비 등을 대출해 주는 ‘실버론’에 대한 인기가 늘고 있다.

실버론은 노인들이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의 고금리 대출을 받지 않고 생활을 영위토록 돕고자 마련된 사회안전망이다. 하지만, 실버론이 인기를 끈다는 것은 거꾸러 몇 백만원 정도 되는 긴급자금이 없어 이씨 처럼 매달 안정적으로 받아야 할 연금마저 미리 댕겨 써야할 정도로 어렵고 비참한 노인들이 많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측은 지난 2012년 5월 ‘노후긴급자금대부’란 이름으로 실버론을 처음 시행한 후 올해 4월까지 5년에 걸쳐 총4만1115명이 1756억600만원의 대출을 받아갔다고 빍혔다.

실버론은 만 60세 이상의 국민연금 수급자에게 전월세자금, 의료비, 배우자장제비, 재해복구비 등의 명목으로 급전을 빌려주기위해 마련된 대출 상품이다. 이율은 5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현재 1.87%)과 동일하다.

원래 2014년까지 한시적으로 실시하려고 했던 실버론은 처음 취지와 달리 대출수요가 급증하자 제도로 정착했다. 2015년 7월부터는 대부한도 금액도 최대 500만원에서 750만원으로 올렸다.

실버론은 도입 첫해부터 관심을 끌었다. 시행 첫해인 2012년 5월 대출이 시작되자 그해 실버론 대출 금액은 398억6800만원, 대부자 수만도 1만152명에 달했다. 이듬해엔 7095명이 272억4700만원을 빌려서 첫해보다 이용자 수가 줄었지만 2014년 7198명(276억원)을 필두로 2015년 7528명(341억원), 2016년 6747명(342억원) 등 이용자수와 대출금액은 꾸준히 증가했다. 올해 역시 지난1월부터 4월까지 대출금액이 120억9100만원에 대부자수만 2395명에 달할 정도로 활발한 이용실적을 보여 왔다.

실버론은 2012년부터 올해 4월까지 지난 5년간 전·월세 자금 용도로 2만4837명(60.4%)이, 의료비 용도로 1만5569명(37.9%)이, 배우자 장제비 용도로 536명(1.3%)이, 재해복구비 용도로 173명(0.4%)이 이용했다. 이용자의 98.3%가 전·월세금과 의료비 마련에 실버론을 이용한 것이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실버론 이용 고객들의 경우 상황방식도 녹록치 않아 매달 받는 연금 급여에서 대출상환금을 원천 공제하는 방식을 선택한다”고 밝혔다. 실제 실버론 이용자가 여윳돈으로 갚는 방식은 0.5%에 불과 했으며 거의 모든 이용자(99.5%)가 나중에 받을 연금액에서 깎는 방식으로 상환했다.

국민연금공단 입장에선 국민연금 급여에서 원천 공제하는 방식으로 실버론의 대출상환율을 99.61%로 높였다. 수월한 상환탓에 원천 공제하는 방식이 공단으로선 나쁠 것이 없다.

빈곤사회연대 관계자는 “국민연금공단에서 대출을 하는 실버론 이용자가 많다는 것은 대한민국 노후대책의 현 자화상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며 “실버론에 대한 수요의 증가는 거꾸러 노후 즉 노인들의 삶이 그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반증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시민단체 관계자는 “노인들이 마지막 노후대책인 국민연금까지 댕겨 쓴다는 것은 노후에도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 되는 우리 사회의 병폐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며 “노인들 대부분이 의료비와 주거비 문제 때문에 급전이 필요한데 이를 보완할 사회적 제도나 국가적 대책이 아무것도 없는 우리사회의 슬픈 자화상을 엿보게 한다. 젊어서 고생하며 부은 연금이 늙어선 빚 갚는 도구로 전락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개선해 나갈 국가적 차원에서의 제도적 장치 마련이 사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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