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서정근 기자] 21일 출시된 엔씨소프트의 '리니지M'은 한국 게임사에 신기원을 열었습니다. 출시 직후 24시간 만에 107억원의 매출을 달성, 넷마블의 '리니지2 레볼루션'의 기록(서비스 첫 날 70억원)을 제치고 일간 기준 최다 매출 게임으로 등극했습니다.

익히 알려진 것 처럼 '리니지M'은 지난 98년 엔씨가 선보인 PC 온라인게임 '리니지'의 모바일 리메이크 버전입니다. 서비스를 앞두고 사전가입자가 500만명이 넘었던 것은 이 게임에 쏠린 관심이 그만큼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출시를 하루 앞둔 20일 오후 이 게임이 이용자들간의 아이템 매매를 주선하는 '거래소' 기능과 이용자간 아이템 전달 기능을 우선 차단하고 12세 이용가 버전으로 출시된다는 공지가 이뤄졌습니다. 우선 출시 후 오는 7월 5일까지 거래소 기능을 추가하는 것을 목표로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심의를 받겠다는 설명도 덧붙여졌습니다.

'리니지'의 게임 아이템은 아이템베이 등 오픈마켓에서 활발히 거래되며 그 자산가치를 인정받습니다. '리니지'의 게임 머니 '아데나'는 게임 팬들 사이에선 비트코인 처럼 가치를 인정받는 가상화폐이기도 합니다.

엔씨는 '리니지M' 출시를 앞두고 게임 아이템을 거래하는 장터인 거래소를 만들 것임을 공언해 왔습니다. 이용자들에게 게임 시스템을 통해 직접 아이템을 팔아 수익을 챙기고, 거래소에서 이뤄지는 이용자들간의 거래에 거래세를 매겨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것이지요. 

거래소를 거치지 않은 이용자들간의 거래에도 양도소득세를 매긴다는 구상도 가졌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용자들 입장에서도 게임 내 거래소의 존재는 자신들이 습득한 희귀 아이템이 현실에서 금전적 가치를 가짐을 입증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거래소 기능이 빠진 채로 출시되는 것은 이 게임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고 접근한 이용자들에겐 '불확실성'을 키우는 것입니다. 엔씨 주식을 구매한 투자자에겐 '리니지M'의 사업성과를 극대화하는데 제약이 됩니다. 소식이 전해진  이날 엔씨 주가는 직전 거래일 대비 11.41% 하락해 36만 1000원으로 거래를 마감했습니다.

이날 엔씨소프트의 공매도는 상장 이후 최대치(19만6256주)를 기록했습니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을 점친 투자자들이 없는 주식을 빌려 판 후 주가가 하락하면 다시 사들여 차익을 얻는 투자기법입니다.

투자자들이 잔뜩 뿔이 날 법한 상황인데, 이날 오후 공시를 통해 배재현 엔씨소프트 부사장이 보유주식 8000주를 매도했다는 공시가 전해지며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습니다. 배재현 부사장은 이 회사 창립멤버로, 송재경 전 부사장과 함께 '리니지'의 개발 주역이었던 인사입니다. 송 전 부사장이 회사를 떠난 지금 배 부사장은 사내에서 '리니지'의 성공에 가장 큰 지분을 가진 이로 평가받습니다.

"악재성 경영정보를 내부에서 선취한 고위임원이 이를 활용해 주식을 선제 매도했다"는 불만이 쏟아졌고, 내부자와 공매도 세력간의 결탁 여부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문제가 제기되자 금융감독원은 관련한 조사에 나섰습니다.

이러한 논란은 엔씨소프트가 게임 내 핵심 콘텐츠인 거래소 기능의 탑재여부와 이용등급을 명확하게 사전에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게임업계 맏형으로 불려온 엔씨소프트가 왜 이러한 실수를 저질렀을까요? 배재현 부사장은 악재성 경영정보를 취득한 후에 주식을 매도했을까요?

엔씨 관계자는 "우리가 거래소 기능을 포함시키겠다고 공언한 것은 지난 5월 16일 간담회를 통해서 였는데, 게임물관리위원회가 거래소 콘텐츠를 포함한 게임은 청소년이용불가 게임에 해당한다고 공식 문서를 통해 공지한 시점은 5월 19일 이었다"고 설명한 후 "배재현 부사장이 주식을 실제로 매도한 시점은 6월 13일과 6월 15일 양일간 이었는데, 거래소 콘텐츠가 우선 빠진다고 확정된 것은 6월 20일 오전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엔씨 쯤 되는 회사가 게임의 성패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콘텐츠 구성과 연령등급을 출시 하루 전에야 확정했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모바일게임은 정부 기관이 아닌 앱 마켓 사업자가 자체 등급분류를 진행합니다. 애플과 구글이 '리니지M'의 이용자 연령 등급을 결정하는 것이지요.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자체 기준을 통해 사후 모니터링을 진행, 자체 등급분류를 받은 게임들이 해당 연령대 이용자들에게 제공하기에 부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으면 사후 심사를 통해 등급을 재조정할 수 있습니다.

엔씨와 애플, 구글, 게임물관리위원회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엔씨소프트는 12세 이용가 등급을 유지하고 거래소 기능을 포함한 채 서비스를 시작한 후 게임물관리위원회 심의를 받아 거래소 기능을 존속시키는 형태를 원했고, 이같은 기조는 정식 서비스 돌입 직전까지 이어졌다"고 밝혔습니다.

넷마블도 '리니지2 레볼루션'의 거래소 기능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판정됐으나 즉각 거래소 기능을 삭제하거나 이용연령등급을 18세 이용가로 전환하지 않고 상당기간 유지했던 만큼 엔씨에게도 이같은 기회를 주는 것이 형평에 맞다는 것이 엔씨 측 주장이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엔씨는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애플이나 구글에게 "거래소 기능을 유지한 채 청소년이용가 등급을 우선 부여해도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유권해석을 내려줄 것을 부탁했다는 전언도 있습니다. 이같은 엔씨의 입장은 게임물관리위 측으로부터 환영받진 못했다고 합니다.

이 소식통은 "넷마블의 경우 이미 게임을 이용하던 청소년 이용층에게 실질적인 피해가 간다는 점이 납득이 가고, 게임물관리위도 이를 고려해 어느 정도 배려했지만 엔씨는 '사전가입에 참여한 모든 이용자들에게 약속했던 사안이니 거래소 콘텐츠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엔씨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한 것은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아닌 구글의 '강경대응'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구글이 "거래소 기능이 한국에서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판정받은 만큼 이를 포함한 채 12세 이용가 등급을 줄 수 없으니 18세 이용가 등급을 주겠다"고 으름짱을 놓았고, 결국 엔씨가 더 버티지 못하고 거래소 기능을 우선 삭제한 후 애플과 구글로부터 12세 이용가 등급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4자간의 실랑이가 언제까지 이어졌는지를 정확히 알 순 없으나, 엔씨는 게임 출시일인 21일이 임박하기 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정황이 엿보입니다. 배재현 전무가 13일과 15일 양일간 주식을 내다 팔 당시 엔씨의 희망이 완전히 '절망'으로 바뀐 타이밍이었다고 단정짓긴 어려워 보입니다. 

게임 이용자들은 서비스 첫날 24시간 동안 '미친듯이' 달리며 107억원의 매출을 엔씨와 구글, 애플에 안겨줬습니다. 엔씨가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이 이용자들의 게임 아이템은 게임 내에서는 물론 아이템베이 등 외부 오픈마켓에서도 거래하지 못하고 개별 이용자에게 귀속됩니다. 이용자들과 주주들 입장에선 리스크가 남아있는 셈이지요. 22일 엔씨가 21일 출시 당일 107억원의 매출을 달성했음을 밝혔으나 주가 약세는 이어졌습니다.

엔씨는 왜 처음부터 '속편하게' 18세 이용가 등급을 받고 거래소 기능을 도입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이는 애플의 서비스 정책 때문입니다. 애플은 청소년이용불가(18세 이상 이용가) 등급은 아예 앱마켓에 등재시켜주질 않습니다.

애플만 거래소 기능을 제외하고 청소년이용가 등급으로 서비스하고 구글은 거래소 기능을 담아 18세 이용가 등급으로 서비스 하는 방안도 있는데, 이는 양대 마켓의 이용자들에게 다른 콘텐츠를 제공하는 '차별'이라는 점에서 엔씨가 꺼려할 만 합니다.

그렇다면 거래소 기능을 담아 12세 이용가 등급으로 서비스한 후, 게임 내에서 거래소를 이용하려는 개별 게이머들에게 연령대 확인 인증을 받는 방법도 있을 법 한데, 이 또한 애플이 허락지를 않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우리는 이용자들의 연령대 등 신상 정보를 파악하는 시스템을 담을 수 없다"는 것이 이유라고 합니다.

우리 게임사들이 "당신네가 안해도 되니 우리가 게임 내부에 인증 시스템을 담겠다"고 해도 "우리가 설계하고 검증한 시스템이 아닌 것을 개별 앱 제공자들이 담는 것도 허락할 수 없다"고 답한다고 합니다.

엔씨가 '리니지M'의 출시를 앞두고 보인 행보는 미숙한 점이 적지 않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2년여간 진행해온 개발 막바지 단계에 심의 관련 이슈가 터졌다고는 하나, 앞서 직격탄을 맞은 '리니지2 레볼루션'의 사례가 있는 만큼 보다 매끄럽게 대응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적지 않습니다.

정부가 일괄 관리하던 심의 체계의 일부가 민간에 분산된 상황에서 빚어진 혼선, 애플-구글 등 앱마켓 사업자들의 우월적 지위 또한 이번 '리니지M' 스캔들의 원인으로 꼽힙니다. 게임물관리위원회의 가이드 라인이 적실했다고 볼 법 하나, 보다 명확하고 빨리 입장을 정리해줬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애플의 '갑질'은 두고두고 회자될 만하다는 평입니다.

넷마블은 이날 게임물관리위원회로부터 '리니지2 레볼루션'의 이용연령등급을 15세 이용가로 판정받았습니다. 기존 거래소 시스템이 유료 화폐인 블루다이아를 통해 거래가 이뤄지게 한 것인 반면 새로운 거래소 시스템은 게임플레이를 통해 얻을수 있는 그린다이아를 통해 거래가 이뤄지게 했습니다. 엔씨도 심의절차를 밟아 거래소 기능을 추가할 수 있을 가능성이 보다 높아진 셈입니다.

주식을 매도해 파문을 낳은 당사자인 배재현 부사장은 지난 2013년 2월 부여받은 주식매수선택권을 행사하기로 결정, 1만주를 14만원에 추가 취득하기로 했고, 엔씨소프트는 22일 이사회를 통해 이를 승인했습니다. 배재현 부사장은 "이번에 취득하는 주식은 (시점을 특정하진 못하지만) 장기간 보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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