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서정근 기자] '미러링'은 원래 '콘텐츠의 자동백업'을 의미하는 IT용어로 통용됐으나, 점차 '무의식적인 모방행위'를 일컫는 심리학 용어로 그 쓰임새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젊은 세대들에겐 '서로 적대하는 상대의 행위를 그대로 재현해 상대 진영에게 고스란히 불쾌감을 되돌려주는 행위'를 의미하는 신조어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나와 다른 상대의 처지나 마음을 살펴 이해와 화합의 바탕으로 삼는 '역지사지'와는 그 궤를 완전히 달리하는 것으로, 과거 함무라비 법전에 담겼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류의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과 맥을 같이 한다.

최근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1호는 '적폐청산'이다. 정권 내에서 이를 두고 이론이 없고, 이를 둔 일반 대중들의 공감과 지지도 탄탄하다. 그러나 내각구성과 고위공직자 임명을 위한 인사청문회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와 야당이 대치하는 양상, 적폐청산을 위해 '시동'을 거는 모습과 이에 대한 보수 야당의 저항은 앞서 언급한 '역지사지'보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등의 표현을 떠올리게 하는 측면이 적지 않다. 심지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과 '미러링'을 떠올리게 하는 점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병역면탈, 부동산투기, 세금포탈, 위장전입, 논문표절 경력자는 고위공직자로 임명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은 내각 구성의 첫 단추인 국무총리 임명부터 그 실현이 어려워졌는데, 문 대통령은 "공약은 어디까지나 원칙일 뿐 세부적인 적용 기준은 따로 정해야 할 것"이라고 입장을 내놓았다.

약속은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고,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국정을 이끌어가면서 '정말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지켜야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전 정부보다 도덕적인 측면에서 높은 수준일 것을 의심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흠결 없는 사람을 찾기 어렵고, 흠결이 드러난 후보자들의 임명에 대한 여론도 대체로 호의적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같은 '태세전환'은 분명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측면도 있다.

야당은 부적격 후보자들에 대한 공세수위를 높였으나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적 지지,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 임명됐던 고위공직자들의 '수준', 지금의 야당이 당시 고위공직자 후보를 지켜내기 위해 엄호했던 전력 등을 감안하면 운신이 자유롭지 못하다.

고위 공직자 후보 검증 과정에서 새 정부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야당 측 청문위원들에게 쏟아낸 '문자폭탄' 등은 이들의 처지를 더욱 옹색하게 만들었다. "야당노릇 하기 힘들다"는 탄식이 절로 나올 만 하다.

고위공직자 인선이 차관급 인사 임명으로 확대된 후 양측의 대립이 점차 심화될 만한 징후도 엿보였다.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인선 과정에서 구 여권 몫으로 이미 임명돼 3년 임기가 보장된 김용수 상임위원이 돌연 미래창조과학부 2차관으로 임명됐고 그 자리는 민주당 측 인사인 고삼석 전 위원이 다시 임명되며 채웠다.

야당이 반발하자 민주당 측 인사들은 "방통위 상임위원 중 3/5을 정부 여당이 차지하는 것이 방통위 설치법의 법정신"이라며 이를 엄호하고 나섰다.

김장겸 MBC 사장과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조기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여권에서 공공연히 흘러나온다. 공영방송 정상화와 방송개혁을 '적폐청산' 목록의 상위 순번에 뒀을 문재인 정부 입장에선 이를 요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높은 인기를 감안하면 공영방송 정상화와 연계해 이들의 경질 여부를 둔 여론조사를 시행하면 찬성 여론이 높을 가능성이 유력하다.

그러나 이들의 임기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고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이를 보장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야당 측의 반발이 없을 수 없다.

김용수 위원을 미래부 2차관으로 발령하고 고삼석 위원이 이를 대체하자 격렬하게 반발했던 야권은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엽에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을 대상으로 이명박 정부가 집권 초기 사퇴압력을 넣었던 것을 기억하고 싶지 않을 지 모른다.

지금 민주당 인사들은 당시 자신들이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도 법적으로 보장된 기관장들의 임기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격렬하게 반발했던 것을 잊었을지도 모른다.

김성주 대한적십자회 회장은 최근 자리를 내놓았고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취임 직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박명진 위원장과 영화진흥위원회 김세훈 위원장의 사직서를 수리했다. 김성주 회장의 경우 자진 사퇴 형식이었고 문체부 산하의 두 기관장은 전 정권에서 블랙리스트 작성 과정에서 연루되어 감사원 감사를 받은 경우다.

이들이 잔여임기를 완주하지 못하고 물러난 것을 '압력'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이들 중 일부가 연루됐던 사안을 감안하면 '용퇴' 쪽이 현명한 처신일 수 있다.

다만, 새정부 들어 고위 공직자 인선과 관련돼 양측이 빚었던 파열음,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공직자의 임기는 보장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원칙'을 떠올리면 이들에게 눈길이 한 번 더 가는 것 또한 사실이다.

4년여 남은 문재인 정부의 임기 중 정부와 야권은 끊임없이 대립구도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지향점이 뚜렷히 다른 두 세력이 공존의 틀을 만들기 쉽지 않다. '적폐청산'을 내걸어 당선된 집권세력의 드라이브는 상대진영의 '실존'에 부담을 주기 마련이다.

두 진영 모두 집권 경험이 있고 제1야당으로 존재하며 상대 진영에 '적대적 동반자'로 맞섰던 경력도 있다. 양측 모두 실상으로는 국정 운영을 어떻게 해야 옳은지, 상대의 허물과 약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야당은 자신들이 집권하는 동안 쌓여왔던 폐습 중 반드시 도려내야할 것들이 있다면 겸허히 이를 인정하고 이의 청산에 동의해야 한다. 정부도 국정과제 수행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개혁을 위해 '칼'을 뽑아야 할 일이 생기면 과감히 뽑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것 처럼 '원칙'을 지켜야 하고 국정운영을 위해 '파트너'가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반드시 없애야 할 적폐를 도려내고 나라를 잘 이끌어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면, 그 다음부터는 양측이 '품격'을 지켜야 한다. 정파적 이해에 함몰되어 '내로남불'과 '미러링'을 시전하는데 여념이 없으면 국민이 불행해진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수준에 머물지 않고 '역지사지'의 수준에 이르러야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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