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호영 기자] "우리 세대 국민 중 평화시장 옷 한번 안 입고 자란 분들 없을 겁니다. 당시 도매로 속옷부터 운동복, 스카프까지 이곳에서 만든 옷이 전국 소매처 곳곳으로 팔려나갔으니까요. 국내 섬유, 패션산업 근간을 다져왔으니 한국 산업의 산 증인인 셈이죠"

현부용(67) 평화시장 대표이사는 40년 반세기 젊은 시절을 평화시장과 함께 했다. 60여년 평화시장 성장사 중 3분의 2에 달하는 세월이다. 

평화시장은 대지 2만4438평(8만786㎡), 연면적 74만7316평(247만466㎡) 규모로 동대문역부터 가로로 길게 펼쳐져 있다. 시장 건물 출입구만 모두 15곳이다. 한번 들어가면 다른 출입구를 찾아나오는 것이 쉽지 않을 정도다. 

6·25 직후 판자촌과 노점상으로 형성된 평화시장은 1958년 대화재 이후 1962년 현대식 건물 상가로 거듭났다. 

시장은 입점 상인들에겐 삶의 터전이고 곧 희망이 돼왔다. 점포 2100여개, 1800명 남짓한 상인들은 그렇게 30~40년 평생을 동고동락해온 것이다. 

영업시간은 밤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지금은 소매 비중이 늘어 도소매 절반씩 취급하지만 평화시장 근간은 도매다. 초기엔 건물 3층에서 제작해 아래 1~2층 점포에서 판매하는 구조를 유지해왔다.

시장 상인들은 70~80년대 산업화 시기부터 평화시장에 터를 잡고 일가를 이뤘다. 지금은 1개 점포당 직원과 가족까지 5000여명 대식구다. 

이때는 시장 전성기이기도 하다. 70년대만해도 유일하게 자체 생산 시스템을 갖춘 전국 최대 의류 도매 시장이다 보니 소매상들이 동대문 고속버스터미널을 통해 몰려들었다. 전국의 모든 옷을 평화시장에서 전부 떼다 팔았던 것이다. 버스를 대절해 소매 상인들을 서울역에서 시장까지 데려오고 데려다주고 할 정도가 됐다. 

평화시장은 산업화 근간을 다지며 정신없이 돌아갔다. 국내 노동계에서는 잊지 못할 '전태일' 분신사건도 이 시기에 발생했다. 당시 재단사였던 전태일의 죽음은 평화시장의 또 다른 성장사다. 평화시장으로서는 가슴에 묻은 사건이기도 하다. 

"옷이 셔츠 소매만 달면, 바지 다리만 달면 팔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녜요. 동란 직후인 1953년경 피난민들이 천막 치고 그렇게 노점으로 시작한 시장이죠. 미군 옷을 다시 나염하고 봉제해 팔았습니다. 옷뿐만 아니라 물자가 귀하던 때여서 만들기만 하면 팔려나갔죠" 

현 대표는 "아마 그 시절 그 와중에 아픔과 슬픔도, 행복도 있었던 것 같다"며 "모든 게 열악했지만 장사가 호황이었고 밤새 일했다. 한밤 중 정전되기 일쑤였고 촛불 켜고 장사한 적도 많다"고 했다. 

이어 "한번만 생각해보면 상황을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오랜 세월 시설은 낙후했고 점포 한 칸에 달린 식솔이 몇인지 힘든 상황은 지속됐다"며 "공장에서 근로기준법 지키라고 분신한 전태일은 이같은 전성기 뒤에 자리한 가슴 아픈, 우리 산업화의 어두운 일면"이라고 했다. 그는 "평화시장은 그런 전태일을 품고 있는 곳"이라고 힘줘말했다. 

'상전벽해'란 동대문 시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당시 고속버스 터미널 자리는 지금 동대문 종합시장이다. 예전 덕수상고 자리엔 두산타워가 들어섰다. '평화시장'에 뒤이어 '평화'를 달고 신평화, 청평화 등 여러 도매시장들이 속속 생겨났다. 

지금 이렇듯 국내 산업화 근간을 견인해온 평화시장은 고전을 거듭하고 있다. 청계천 고가 다리가 있던 시절 차 댈 곳 없이 붐비던 때는 옛말이 돼가고 있다. 

"세월호와 메르스, 이제는 사드 보복 직격타까지 입고 있습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 시장이잖아요. 메르스 때는 사람 모이는 장소를 기피하면서 점포가 텅텅 비더니 90% 매출이 증발했어요. 지금은 중국 등 통관 지연으로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현 대표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악재만 지속되는 상황"이라며 "사드발 중국 통관 지연이나 제재가 어느 정도냐면 옷에 붙은 라벨 하나 하나를 다 떼고 세라는 식"이라고 했다. 이어 "옷은 철 지나면 못 파는데 그렇게 붙들어두는 게 말이 안 된다. 평화시장은 사드발 직격타를 입고 있다"고 했다. 

공청회 한번 없이 속전속결로 시행된 전안법만 해도 그렇다. 현 대표는 "평화시장에 내걸린 현수막 '3일만의 기적' 문구는 오늘 원단 떼서 공장에 넣으면 3일만엔 팔 수 있다는 얘긴데 사실상 동대문은 하루만의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했다. 

이어 "전안법은 대기업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엔 맞지만 영세한 동대문 평화시장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엔 맞지 않는 법안"이라며 "시험 검사만 7일이 소요되는데 동대문 시스템에서는 시행돼서는 안 되는 법"이라고 했다.

또한 그는 "원단 등 재료 수준에서 검사해야 하는 게 맞다. 저희 보고 감당 안 되고 장사 안 되면 그만 두라는 얘기다. 말이 안 된다"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평화시장 가치가 있고 그같은 가치는 한번 훼손 당하면 돌이키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일본 사람들이 샘플 들고 평화시장에 만들어달라며 찾아옵니다. 3일만에 만들어주니까요. 이같은 '3일만의 기적'은 동대문의 경쟁력입니다. 트렌드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다품종 소량생산 시스템도 저희만의 경쟁력이죠. 시장 현실은 외면한 채 정부와 지자체간 정책이 엇박자를 거듭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현 대표는 "재래시장 주차장 문제만 해도 심각하다"며 "국내 최대 도매시장인 평화시장에 허용된 주차대수는 62대뿐"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그래도 평화시장은 낫다. 인근 상가들은 20대도 공간 확보가 안 돼 못 대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주차비만 1시간당 6900원, 7000원 가량이다. 해당 주차비는 서울시 수익원이 되고 있다. 통상 소매 상인들은 원단 구입 등 여러 곳을 한번에 들르는 식인데 이 경우 3~4시간만 주차해도 하루 한번에 2~3만원을 내야 한다는 얘기다. 

더군다나 올해 4월 1일부로는 기존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받던 주차비를 24시간으로 변경, 적용하고 있다. 시나 지자체, 그리고 정부는 대외적으로 전통시장 지원책을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시장에 부담만 지운 채 정부 수익을 챙기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산적한 문제에 도움을 주기는 커녕 짐만 지우는 정책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고객인 전국 소매 상인들을 위한 신평화간 공조사업도 시원하게 속도를 못 내고 있다. 현재로서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지하상가 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요즘 쇼핑몰도 새로 생기면 주차장부터 마련하잖아요. 정부 정책이 시장 소매상 고객들의 발길을 끊는 방향이 돼서는 안 됩니다. 평화시장에 온 고객이 무료 주차할 수만 있다면 더 좋은 지원책은 없을 것 같습니다. 더 싸고 좋은 품질의 상품을 도매 공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고 평화시장은 이를 지속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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