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호영 기자] "동대문 도매 시장은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하고 특화된 생태계입니다. 아침에 원단 넣어서 저녁에 완성된 옷이 나오는 시스템은 동대문밖에 없어요. 모든 관심과 정책은 이같은 동대문 생태계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박중현(55) 테크노상가 상인회장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 꼽았다. 바로 동대문은 일반 고객이 아닌 소매상과 바이어들을 상대하는 도매 시장이라는 점이다. 시장 활동 시간대는 소매 상권과는 낮과 밤이 완전히 뒤바뀐다. 테크노상가 상인들은 밤 9시 30분 시장에 나와 새벽 6시면 문을 닫는다. 

동대문 30개 가량의 대형 쇼핑몰과 도매 상가 중에서도 테크노상가는 일명 '작지만 강한 상가'로 통한다. 주력 품목은 동대문 최저가의 면제품과 니트류 위주 여성 패션이다. 

테크노상가는 1996년 준공 직후 1999년 말 기반을 잡을 때까지 7전 8기 이력의 상가로도 유명하다. 

테크노상가 오픈 당시만 해도 동대문은 도매가 활발했다. 시장 물건을 팔고 남은 재고를 남미 등 세계 각국에서 사갔다. 이같은 재고 취급으로 출발해 성장한 곳이 바로 테크노상가인 것이다. 

신평화·제일평화·남평화·동평화 등 시장 이름이 '평화' 일색인 동대문 시장에서 새롭고 최신의 이미지를 위해 일부러 상호명을 '테크노상가'라고 했다. 

의도는 적중해 고객들은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1층부터 2층, 4층까지 분양을 거듭, 상인 170명의 상가로 자리잡게 됐다. 

디오트나 상인 1000여명 규모의 평화시장 등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상가지만 박중현 회장은 '작지만 강한 상가, 테크노상가'라고 힘줘 불렀다. 

3000원짜리 티와 1만원짜리 청바지를 구입하려고 테크노상가를 왔다면 제대로 찾은 것이다. 테크노는 동일 품질 최저가격으로 특화돼 살아남은 시장이다.

지금도 낮은 임대료와 디자인, 수량, 영업방식을 통해 다른 상가 제조원가 이하의 도매가를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다.

테크노상가 제품들은 성격적으로 보면 유니클로 등 SPA 브랜드와 유사하나 신상품 주기가 빠르고 단가가 낮아 가성비 좋은 제품을 찾는 요즘 소비 트렌드와 가장 잘 맞아떨어진다. 유행에선 오히려 앞선 곳이다. 정통 동대문 시장의 모습을 가감없이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해외 SPA 브랜드도 동대문 시장의 컬러풀하고 다양한 변신은 따라오지 못합니다. 이 바지와 저 티, 이렇게 동대문 전체가 하나의 세팅 개념이 강하기 때문이에요. 한국의 젊은층은 트렌드에 민감한데 그 니즈를 신속하게 맞춰줄 수 있는 곳은 동대문뿐이라고 단언할 수 있어요"

정부 정책과 지원은 온전히 이같은 동대문 도매 시장의 특성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상권도 해치지 않고 각종 지원책도 성공할 수 있다. 

박중현 회장은 "빠른 트렌드를 붙잡아온 동대문 시장은 공장과 판매 상인, 디자이너가 시스템적으로 온전히 하나로서 움직인다"며 "서로가 분리돼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10년간 내 옷만 만들어주는 가족같은 공장이 있는데 굳이 공장을 소유하는 것은 불필요한 것"이라며 "오로지 공장이 전부인 공장 사장님, 판매가 전부인 상인, 그리고 디자이너가 하나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동대문"이라고 했다. 

이같은 생태계에 인위적으로 디자이너나 공장을 상인들과 분리시키는 형태의 각종 정책이나 지원은, 정착되지 못하고 겉돌 뿐 기존 동대문 생태계와 상생할 수 없는 이유다.

많은 지원이 필요한 동대문 시장과 박 회장은 이같은 동대문 도매 시장의 특성을 정부 등에 적극 피력하고 있다. 

도소매를 뭉뚱그린 소위 골목형 전통시장 기준의 밑그림에서는 공감대를 끌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 새 정부 들어서며 각 부처 도매산업 전담팀도 기대하고 있다. 

박 회장은 "시장 제품들은 이 정도 퀄리티밖에 안 되나. 품질을 높여 더 높은 가격을 받으라"고 하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동대문 생태계와 동대문 소비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동대문 고객이 원하는 상품은 바로 이 정도 품질, 이 정도 가격에 최신 트렌드를 담는 것"이라며 "이 품질과 이 가격을 뛰어넘으면 우리 고객은 아닌 것이다. 그러면 고객은 떠난다"고 강조했다. 

동대문 상권은 상권에 들어선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엔 아쉬운 점도, 할 말도 많다. 서울디자인재단과 상생을 위한 많은 노력을 하지만 DDP엔 상권 터줏대감인 동대문 시장은 공간배치 단계부터 여전히 빠져 있다. 

DDP에서 강조하는 '예술'이 주변을 밝히는 것을 넘어서면 현실은 동대문 생태계가 교란될 뿐인 것이다. 향후 동대문의 기동본부가 떠난 후에도 이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동대문 측에서는 동대문의 미래를 위해 주고객인 바이어들을 위한 도심공항터미널, 물류지원센터, 비즈니스호텔, 주차장, 그리고 종사자들을 위한 편의시설과 도매지원센터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를 놔두고 동대문 상권에 새로운 형태의 상가가 부지에 추가된다면 그야말로 '최악'인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미 동대문 도매 시장은 포화 상태다. 더군다나 동대문은 사드와 전안법 등으로 지역 소매 상권이 활기를 잃었고 도매까지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 대중국 수출을 주로 하는 인근 상가들은 사드로 손님 절반이 날아가버린 상태다.

"앞으로 핸드메이드 오색 색동 한복은 다신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전안법 때문이죠. 한복은 한벌에 쪽이 많이 들어가는데 한쪽당 검사비만 10만원이에요. 청년 창업자의 창의력을 죽이고 다품족 소량생산의 최근 동대문 시장 제품들은 경쟁력을 잃게 되겠죠."

박 회장은 "사드로 수출길이 막히고 전안법으로 내수시장마저 막혀버렸다"고 동대문이 처한 상황에 대해 토로했다.

올해 1월 28일 시행에 돌입한 전기용품안전관리법(전안법)은 서울시와 중구청에서 그동안 여러번 개선이 건의됐던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품공법)이 개정없이 전기안전법과 통합되면서 온라인 부문과 게시 의무가 강화됐다. 전안법도 정부 발의로 공청회 한번 열리지 않고 일사천리 마무리됐다. 

물건 한번 보지 못한 구매대행업체도 시험성적서를 게시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번 전안법 시행을 앞두고 동대문 상권은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특히 진정한 소비자 안전과 산업 발전을 위해 정부 부처가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머리를 맞대야 하는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생존을 위해 거리로 뛰쳐나가자는 상인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전안법은 가격과 시스템상 가능한 대기업은 문제될 것이 없는 법안이다. 이와 달리 영세한 수작업 업계나 상품 주기가 빠른 동대문 상권 등이 몰살하지 않으려면 소비자 안전을 위한 독성이나 오염물질 관리는 '수원'격인 원료 단계에서 관리가 돼야 한다. 

이후 개별 제품은 사후관리를 통해 문제가 발견된 옷에 한해 이력을 역추적, 처벌기준에 의해 단속하는 형태여야 한다.  

박 회장은 "비단 전안법만이 아니라 정부가 동대문 시장 일대에 뭔가 변화를 줄 때는 해당 지역과 산업에 종사하는 당사자들에게 물어보고 확인하고, 그렇게 의견을 취합해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 회장은 1994년 소위 '준공무원' 딱지를 떼고 제일평화시장에서 출발, 디자이너클럽을 거치며 동대문 시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2000년대부터 테크노상가 상인들로부터 사입해 중국에 내다팔았다. 상가 상인들이 몽땅 박 회장 고객이 된 것이다. 이같은 상인들과의 신뢰 속 현재 상인회장을 맡게 됐다. 

이외 소상공인연합회 전안법대책위원장, 동대문 패션타운 관광특구협의회 부회장, 서울상인연합회 이사, 중구 전통시장협의회 사무총장 등으로 활동 중인 박 회장은 이들 활동을 통해 직접적으로 테크노상가의 미래를 여는 시범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서울상인연합회 시범사업으로는 고객층이 직접 스마트폰으로 소통할 수 있는 테크노상가 모바일 앱 구축 사업이 있다. 모바일 앱은 도매상가에선 어렵지만 결제시스템 도입을 위해 준비 중이다. 향후 모바일 앱 기반으로 국내외 오픈마켓과도 제휴할 생각이다. 

또 다른 시범사업으로는 상가내 '테크노소상공인협동조합'을 설립, 현재 170명 상인 중 20명 가량 참여하고 있다. 공영홈쇼핑에서 단일 브랜드를 론칭, 연예인 재능 기부를 받아 브랜드를 키울 생각이 있다. 이렇게 해외로 진출, 글로벌 각 지역 토종 브랜드와 협업까지 구상하고 있다. 특히 중국 진출을 위한 토탈숍의 대리점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상인들이 오늘 하루 매출에 고정된 시선에서 벗어나 차근차근 다각화로 힘을 합쳐 미래를 준비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크고 작은 현안 속 시범사업으로 미래를 위해 다방면으로 뛰고 있는 만큼 조만간 긍정적인 움직임들이 결실을 맺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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