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황태자’로 불렸던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그는 1993년에 ‘묻어둔 이야기’라는 회상록을 세상에 내놓은 적이 있다. 이 책의 첫머리에는 자신의 가족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특히 장남 이재현 현 CJ그룹 회장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자부심이 묻어난다.

그의 서술에 따르면 이재현은 대학(고려대 법학과) 졸업 후 조부(이병철 회장)의 바람과는 달리 삼성이 아닌 외국계 은행에 입사했다. 삼성에 들어가 ‘회장의 장손’으로 특별대우를 받는 것을 꺼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경영학 전공이 아닌 이재현이 외국계 은행에 합격한 비결(?)에 대해 그는 ‘(재현이가)외삼촌에게 경영학을 배웠고 부기도 독학으로 깨쳤다’고 자랑하고 있다.

또 ‘외국에 가서 회화를 배운 적도 없는데 전화상으로 미국 사람들과 농담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면 퍽 놀랍다’라는 대목도 나온다. 어찌 보면 팔불출(고인에게 결례가 된다면 용서하시길) 같기도 하지만 그만큼 장남에 대한 자부심이 컸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재현 회장이 17일 4년여의 공백 끝에 경영 복귀를 선언했다. 경기도 광교에서 열린 CJ블로썸파크 개관식에서다. 이날 이 회장은 “2010년 제2도약 선언 이후 획기적으로 비약해야 하는 중대한 시점에 그룹경영을 이끌어가야 할 제가 자리를 비워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했고 글로벌사업도 부진했다. 가슴 아프고 깊은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오늘부터 다시 경영에 정진하겠다”며 ‘2020 Great CJ’에 이어지는 ‘2030 World Best CJ’ 비전을 새롭게 제시했다. “2030년에는 세 개 이상의 사업에서 세계 1등이 되고, 궁극적으로 모든 사업에서 세계 최고가 된다”는 게 그 요지다.

그의 이 같은 발언에는 지난 4년의 세월을 만회하겠다는 의욕이 묻어난다. 어쩌면 지난 정권에서 ‘친노 기업인’으로 낙인 찍혀 불이익을 당했다는데 대한 보상심리도 깔려 있을지 모르겠다. (얘기가 옆길로 새지만 CJ가 ‘광해’ ‘변호인’ 등의 영화를 제작했다는 이유로 그를 ‘친노’로 보는 것은 왜곡된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문화상품 시장에서는 보수보다는 진보적 색채의 컨텐츠가 더 상품성이 있었던 게 사실이고 기업으로선 잘 팔리는 상품에 투자하는 것이야 말로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이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여기서 다시 이맹희 회장 얘기로 돌아가 보면 그가 회상록에서 여러 차례 반복해서 피력하는 것은 요즘 표현으로 ‘클린 컴퍼니’에 대한 소망이다. 아마도 부친을 도와 회사를 경영하면서 겪었던 한비사건 등의 경험에서 터득한 교훈이었을 것이다.

일례로 그는 책의 말미에 부패 방지의 모범 케이스라며 고 남덕우 전 국무총리와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일본에 함께 출장을 갔을 때 남 총리 모르게 호텔 숙박료를 대신 지불했는데 한국에 돌아온 후 남 총리가 부르더니 그 돈을 돌려주더라는 것이다. 그는 남 총리 같은 관리들 덕분에 그나마 박정희 정권이 견딜 수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특히 ‘발효하는 기업과 부패하는 기업’이라는 소제목의 글에서 “기업이 커질수록 비리와 부패는 더 엄격하게 제거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기업이 커나가는 과정에서 비리와 부패의 유혹도 비례하여 커진다는 점을 경계한 통찰력이라 할 수 있다.

이재현 회장이 새로운 도약을 구상하며 살펴야 할 부분도 바로 선친의 이런 계훈이 아닐까 싶다. 그가 제시한 비전대로 CJ가 급성장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비리와 부패의 유혹도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4년의 공백을 끝내고 새롭게 시작되는 ‘이재현 시즌2’에서는 그 자신의 비전과 함께 선친이 소망했던 클린 컴퍼니의 꿈도 함께 구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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