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에서 원사까지'의 수직계열화를 달성한 최종건, 최종현 회장 형제의 경영 정신은 최태원 SK그룹회장(가운데)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진 출처=SK이노베이션>

[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1973년 7월 최종현은 형 최종건이 남긴 선경유화 가동을 위한 원유를 구하러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다. 공장을 돌리기 위해선 하루 생산 15만 배럴 규모의 원유가 필요했다. 

이러한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은 보통 컨소시엄으로 이뤄지는데, 1975년 삼성물산이 종합상사 1호로 지정되기 전이어서 국내에는 이렇다 할 협력사가 없었다.

이번에도 1966년 선경에 원사공장 설비를 공급한 이후 좋은 관계를 유지해오던 일본 이도추상사를 활용키로 했다. 

경험이 풍부한 세지마류조 회장의 주선으로 사우디 정부와의 협상까지 진행됐다. 

형식상으로는 정부 간 계약이었지만 실제 협상자는 사우디 정부 대 선경이 되는 상황이었다. 

이와 함께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민(PETROMIN)이 한국의 민간회사에게 얼마만큼의 석유를 공급하느냐 하는 결정은 전적으로 사우디 측에 달린 거래였다. 

로비 대상은 사우디 파이잘 국왕의 처남이면서도 중앙정보국장 오른팔 역할을 하던 카마라담이라는 거물인지라 대면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여러 차례 타전 끝에 협상이 진행, 카마라담은 조카 베드라위를 대신 보내 폴리에스테르수지공장을 제다(Jeddah)에 건설해달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에 협상단은 흔쾌히 승낙하고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하지만 사우디 측의 원유 공급을 약속받고 돌아온 지 두 달이 되지 않은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은 36일 만에 종료되었으나 중동의 산유국들은 이 전쟁을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위력을 과시할 호기로 이용, 원유 가격을 일방적으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순식간에 원유값이 천정부지로 급등했으니 일본 측 파트너들까지 한발 물러서버렸다. 결국 최종건이 남긴 정유공장 건설의 꿈이 물거품이 되는 모양새였다.  

그럼에도 최종현은 1974년 약속대로 200만달러를 투입해 제다에 폴리에스테르수지공장을 건설했다. 선경으로서는 얻는 것이 없는 투자였지만 이는 약속가 신뢰와 우정을 중시하는 중동인의 정서를 자극했다.그렇게  최종현은 사우디 왕실의 부동의 ‘브라더(형제)’가 된다.

중동과의 인연을 활용한 경영 기법은 최근 SK그룹의 핵심 전략인 글로벌 파트너링(Global Partnering)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6년 5월 박근혜 대통령 경제사절단으로 중동 방문 당시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SK임원들은 당시 개최된 모든 포럼과 행사를 직접 찾아 다니며 이란 당국과 자원&#8231;ICT&#8231;인프라 3대 분야에서의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최종건 회장이 떠나고 대내외적으로 어수선했던 상황, 신임 회장으로 취임한 최종현은 원활하고 예측가능한 경영을 위해 1974년 회장 직속기관인 경영기획실을 신설했다. 

이 같은 경영합리화조치는 곧바로 실적으로 이어져 이듬해에는 전년 대비 71% 증가한 8600여만달러어치 원사를 수출, 형의 유지를 이어받은 ‘석유에서 섬유까지’라는 제2의 창업을 공식 선포했다.

제2차 석유파동의 거센 바람이 밀려오던 1978년 3월, 최종현 회장은 카마라담의 초청을 받아 사우디 항만 제다로 향했다. 

“최 회장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늘 고맙게 생각해왔습니다. 우리가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말씀해주십시오.” 

자신에게 석유공급을 부탁하라는 메시지였다. 제1차 석유 파동 당시 원유를 구하기 위해 김종필 전 총리도 그를 만나기 위해 사우디를 찾았지만 만나지 못하고 돌아올 만큼 대면하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석유공급을 요청해 정유산업의 꿈을 펼칠 절호의 찬스에도 “아무것도 없습니다”가 최종현의 대답이었다. 두 사람은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즐겁게 이야기만 나눴다. 다름 아닌 첫 만남부터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내키지 않아서였다. 

제1차 파동과는 달리 2차 석유파동은 중동국가들이 친이스라엘권 국가를 상대로 펼친 석유무기화 정책으로 빚어진 공급부족이 원인이었다. 

대한석유공사(유공)의 지분 50%와 경영권을 갖고 있던 걸프사 역시 공급난을 맞아 유공에 대한 원유 공급을 중단하고 1980년 중순 한국으로부터의 철수를 결정했다. 

전두환 정부는 다급하게 유공 민영화 방침을 발표했다. 많은 기업들이 정계의 영향력과 현금 동원력을 내세우며 유공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사우디왕실을 형제 삼게 된 최종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1980년 늦가을 박봉환 동력자원부 장관은 선경이 유공의 최종 인수자로 선정됐음을 발표했다. '석유에서 섬유까지'라는 수직계열화가 마침내 실현되며 SK이노베이션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계속)

SK이노베이션 울산 석유화학 복합단지 <사진 제공=SK이노베이션>

'2017 기업가의 부활' 연재 순서

① 우리시대의 거인 아산 정주영 회장 
② 한국 경제부흥의 선구자 연암 구인회 
③ 세계를 품었던 경영인 SK 최종현 회장 (진행중)
④ 한국이 낳은 최고의 기업가 호암 이병철 
⑤ 나라사랑 온몸으로 실천한 청암 박태준
⑥ 경제 외교의 선구자 두산그룹 연강 박두병
⑦ 국가 기간산업에 평생을 바친 현암 김종희
⑧ 중공업을 일으킨 불굴의 개척자 운곡 정인영 
⑨ 20세기 문명 전환 이끈 김성수, 김연수 형제
⑩ 삼성과 효성을 일으킨 혁신가 만우 조홍제 
⑪ 한국 물류 운송의 신기원 일으킨 정석 조중훈
⑫ 교육·문화 보국의 선구자 교보 신용호 회장 
⑬ 한국 섬유혁명의 아버지 코오롱 이동찬 회장
⑭ 살아 있는 '김키스칸 신화' 대우 김우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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