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이 무죄 선고 받기는 이제 어렵겠네.”

대선 다음날 만난 지인이 불쑥 던진 얘기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재판부도 그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정권이 교체되면 세상 구석구석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여여간 정권 승계에도 세상이 바뀌는 판에 여야간 정권 교체는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라고 국민들이 투표로 정권을 바꿔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아야 하는 곳들도 있다. 법정도 그 중 하나다. 정권에 따라 판결이 달라진다면 민주 사회가 아니다.

그럼에도 적잖은 사람들이 앞서의 지인과 같은 생각을 하는 것 또한 우리의 현실이다. 즉, 아직 재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정권이 바뀐 것만으로 유죄 판결을 예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는 어떨까.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에게 의견을 물으니 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2차 영장청구 때의 사례를 들려줬다.

“당시 특검이 예상과 달리 최지성, 장충기 두 사람을 빼고 이 부회장과 박상진 사장에게만 영장을 친 건 나름 머리를 쓴 겁니다. 만약 최, 장 두 사람에게도 함께 영장을 청구했으면 판사가 이 부회장 영장은 기각하고 최, 장 두 사람에게만 영장을 발부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박 사장은 그렇게 하기엔 급이 낮아요. 판사로서도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겠죠. 특검이 그걸 계산한 겁니다.”

그의 이런 분석이 백 퍼센트 옳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검찰에서의 그의 경력 등을 감안하면 상당히 근거 있게 들린다. 결국 법정도 여론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번 투표에서 여론은 ‘적폐 청산’ ‘기업인 범죄 불관용’을 선언한 문재인을 선택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앞서의 지인처럼 ‘정권 교체=유죄 판결’ 식의 성급한 예단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여기서 실제 재판 진행 상황으로 눈을 돌려보자. 이 부회장에 대한 공판은 지난 12일까지 모두 13차례 진행됐다. 그러나 아직도 이 부회장의 유죄를 확정할 만한 증언이나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는 게 재판을 참관한 기자들의 지배적인 의견인 것 같다.

보도에 따르면 오히려 특검측이 밀리고 있는 듯한 판세다. 13차 공판만 해도 증인으로 참석한 박재홍 전 마사회 감독은 특검의 질문에 반대되는 내용을 증언하고 진술서 내용 일부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거나 부인해 검찰이 제출한 진술서의 신뢰성에 의문을 갖게 했다.

특히 그는 “(자신을) 정유라의 들러리라고 생각한 적 없다”며 “선수 한 명만 지원하는 게 이상하게 보일 수 있으니 승마 종목 전체적으로 후원에 나서는 것으로 생각했고, 이 같은 삼성의 지원이 올림픽 출전을 위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증언은 삼성의 승마 지원이 오로지 최순실로부터 도움을 받기 위한 대가였다는 특검 측 주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 10일 두 번째로 진행된 증인신문 때도 특검이 작성한 조서 내용과 실제 증인들의 진술이 엇갈린 바 있어 부실 수사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는 게 기자들의 전언이다.

재판이 이런 상황임에도 이재용 부회장의 유죄 판결을 예단하게 만드는 작금의 사법부 현실은 우려할만하다. 그리고 이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 세력 쪽에서도 경계심을 가지고 살펴봐야 한다. 문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약속한 세상은 여론에 따라 판결이 좌우되는 세상은 아닐 것이라고 믿기에 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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