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욱의 대선전망대] 논란이 일었던 ‘스탠딩(Standing) 토론’이 지난 19일 밤 개최됐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두 명의 후보가 사회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치열하게 토론하던 그 모습을 기대했던(?) KBS와 국민의당의 기대와는 달리 중구난방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사실상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1명과 나머지 4명의 후보 간에 벌어진 토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많은 시청자들은 ‘문재인 대통령 청문회’라거나 ‘문재인 대통령 집권 이후 풍경’이라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이날 토론회는 문재인 후보 검증으로 시종일관하다시피 했다. 토론회 결과가 반영된 여론조사가 실시될 테니 그 평가는 곧 객관적인 수치로 나올 것으로 보인다. 그 여론조사의 신뢰성은 별개로 하고 말이다.

어떻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스탠딩 토론’, 일명 ‘서서토론’은 끝났다. 카메라 화면이 상반신만 잡아주는 바람에 서서 했는지, 앉아서 했는지 구분도 안되는 부분은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그렇다면 각 후보에게 남겨진 숙제는 무엇일까? 지지율 역순으로 살펴본다.

 

낮은 지지율에 합리적 보수 이미지 내다버린 유승민

 

이날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는 사드, 전술핵 등 주로 대북문제를 놓고 문재인 후보를 공격했다. 특히 ‘북한을 주적(主敵)으로 볼 것이냐’를 두고 공세를 펼쳤다. 주적은 포털 사이트 실검 1위를 차지하는 등 얼핏 문재인 후보를 효과적으로 공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승민 후보가 놓치고 있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유승민에게 붙어 있는 ‘합리적 보수’라는 이미지가 훼손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에서 합리적 보수는 ‘종북좌파’, ‘빨갱이’ 등 명확한 개념 구분 없는 이념 공세에서 자유로운, 동시에 경제적인 관점에서 대기업 위주의 성장 정책만을 고집하지 않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유승민 후보는 과거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국회 연설을 통해 ‘민주공화국’을 언급하며 박근혜 정권과 날을 세우며 합리적 보수로 평가받은 바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토론회에서 ‘주적’ 개념을 갖고 기존 보수층에게는 어필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를 합리적 보수로 바라보던 중도층에게는 실망스러운 토론이었다.

유승민 후보와 바른정당은 현재 낮은 지지율로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 낮은 지지율의 이유를 제대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자유한국당과 다를 바 없는 유승민 후보의 안보관으로는 합리적 보수라는 평가는 유지될 수 없고, 바른정당의 존재가치도 증명하기 힘들다.

이번 토론회에서 유승민 후보가 보여준 모습으로는 ‘자유한국당에 흡수’되거나 ‘소멸’될 운명에 처해질 것이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유승민 후보와 바른정당은 국민들이 기대했던 ‘합리적 보수’와는 거리가 먼 길을 가고 있다. 국민들에게 버림받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낡은 이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심상정 후보

 

이번 토론회에서 가장 손실이 큰 후보가 있다면 단연 정의당 심상정 후보다. 표면적으로 보면 성과도 없지 않았다. ‘스트롱맨’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집에서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고 발언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로부터 사과를 받아냈고, 대북송금 논란과 관련해 “도대체 대북송금사건이 언제적 얘기냐. 정책에 대해서 토론해야지 옛날 것을 우려먹기만 하면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질들이 없는 것"이라고 각 후보들을 비판하며 차별성을 보였다.

그러나 심상정 후보 역시 문재인 후보와 각을 세우면서 자신의 발언을 뒤집는 모순을 보여주었다. 특히 과거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의 경제실정을 파고들었는데 이는 심상정 후보가 ‘언제적 얘기냐’라고 질타했던 대북송금만큼이나 오래된 과거의 문제였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서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한 문재인 후보를 추궁하는 과정에서는 자신의 최근 입장과 배치되는 모순을 보여주기도 했다. 심상정 후보는 지난 17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사드는 아직 작전배치 되지 않았습니다. 차기 정부가 다시 따져보고 결정해야 합니다. 백악관 관계자도 이러한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제가 차기 정부를 구성한다면, 사드 효용성을 꼼꼼히 따지고 문제가 있다면 배치를 철회할 것입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문재인 후보와 다르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비판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문재인 후보를 ‘사기꾼’에 비유한 발언과 노무현 정권 비판이 겹치면서 유시민 작가와 함께 정의당에 입당했던 참여계 당원들의 탈당이 속출하고 있어 당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여유있게 집토끼 잡기에 집중했던 홍준표

 

개인적으로 이번 토론회 승자를 꼽으라면 홍준표 후보라고 말할 수 있다. 홍준표 후보는 시종일관 여유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상정 후보의 설거지 공격에 전후사정을 설명하면서도 간단히 사과하면서 마무리지었다. 또한 문재인 후보에 대한 공격은 기존 보수 지지층을 향한 어필로 보였다. 이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게 기웃거리고 있는 전통 지지자를 향한 구애 행위였다. 어차피 손해볼 것 없는 상황에서 야금야금 지지율을 올려가는 작전으로 보인다.

이번 토론회 이후 10%의 지지율을 넘어선다면 전통적인 옛 새누리당 지지층의 복원이 어느 정도 이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겉으로는 문재인 후보를 때리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 안철수 후보를 공략하고 있는 홍준표 후보의 작전은 과연 통할 것인가? 조만간 발표될 여론조사가 입증해줄 것이다.

 

홍준표와 유승민의 협공받는 안철수, 지지율을 지켜낼 수 있을까?

 

예상대로다. 앞선 칼럼에서는 안철수 후보의 지지가 갖고 있는 맹점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무엇보다 충성도가 낮다. ‘반문재인’이라는 목표 하나로 안철수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을 지켜낼 수 있을지가 관건인데, 그 약점을 홍준표 후보와 유승민 후보가 공략하고 있다.

무엇보다 홍준표 후보가 집요하게 공격했던 ‘박지원 상왕’은 앞으로 계속 약점으로 지목될 것으로 보인다. 대북송금 문제에 대해 “공과 과가 모두 있다”고 두루뭉실 말하는 부분은 정체성이 불분명한 정치인의 한계를 보여줄지도 모른다. 우선 호남 표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동시에 반문재인 대항마로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고 있는 전통적 보수지지층을 붙들어 맬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마치 뼈다귀를 물고 개울을 건너던 개가 물에 비친 뼈다귀도 갖기 위해 물고 있던 뼈다귀마저 놓치는 상황이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상황이다.

홍준표 후보와 유승민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집중 공략하는 상황은 결코 안철수 후보에게 좋은 징조는 아니다. 문재인 후보를 공격하는 두 후보는 문재인 지지층의 높은 충성도를 알고 있다. 즉 문재인 지지층을 공략하는 액션이 아니다. 그야말로 성동격서(聲東擊西)다. 문재인을 공격하면서 전통적 보수 지지층을 회유하고 있다. 이는 안철수 후보를 공격하는 것이다.

과연 안철수 후보는 지켜낼 수 있을까?

 

1 대 4의 싸움, 디테일을 잘 챙긴 문재인, 역공은 부족했다

 

이번 토론회는 사실상 문재인 후보 검증의 시간이었다. 북한 주적 문제, 사드 배치의 전략적 모호성, 송민순 회고록의 진위 여부, 노무현 정권 경제실정, 지지자들의 과격성 등 다양한 공격을 받았다.

사실 혼자서 감당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4명의 후보로부터 쏟아지는 공격을 받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질문에 대해 만족스럽지는 못할 수준이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받아내지 못한 질문도 없었다. 이번 토론회에 나온 이슈라는 게 다분히 예상가능한 내용들이었기에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다만 질문에 대해 소극적 답변으로만 일관했을 뿐, 되받아치는 역공은 부족했다. 대표적으로 송민순 회고록 논란과 관련해 국정원을 통해 북한의 의중을 알아보려한 점은 과거 박정희, 전두환, 심지어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 사례를 들어 역공이 가능했다.

향후 토론도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좀더 공세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면 상대방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문재인 후보는 지난 여름 17%대 지지율에서 조금씩 다져오며 쌓아올린 지지율이어서 쉽게 흔들릴 가능성이 없다는 게 장점이다. 역설적으로 토론회를 통해 현재의 지지율에서 좀더 높은 지지율을 쌓아올리는 기회로 활용할 여지가 충분하다.

권순욱 칼럼니스트 kwonsw8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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