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비극에는 종종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machina)’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기계장치로부터의 신’이라는 의미다. 극의 전개상 갈등 구조가 꼬여 자연스러운 결말을 내기 어려운 국면에서 등장해 일거에 모든 갈등을 해결하는 신을 뜻한다. 연극 무대에서는 그 신이 기계장치를 타고 공중에서 내려오기에 이런 용어가 생겼다고 한다.

10일 헌법재판소의 역사적 판결을 지켜보며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떠올렸다. 박근혜 정권이라는 드라마에서 잔뜩 꼬여 있던 갈등 구조가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헌재의 선고에 의해 종결되는 상황을 상상해 본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정사는 올해로 70년이다. 요즘 한국인의 평균 수명에도 못 미치는, 그리 길지 않은 역사다. 그럼에도 다른 어느 입헌국가 못지않은 곡절을 겪어 왔다. 동족과의 전쟁, 시민혁명, 쿠데타와 군부독재, 국회 해산, 국가 원수의 시해 등등. 이제 그 헌정사의 굴곡에 ‘대통령 파면’이라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세워졌다. 이 지점에 이르러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새 이정표가 가리키는 길이 더 나은 국가로 가는 길이라는 확신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의 상상처럼 이번 헌재 선고가 그간의 갈등에 종지부를 찍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이미 수많은 이들이 호소한 것처럼 헌재 결정에 대한 모두의 승복을 전제로 한다.

그 승복을 선도하는 것은 정치 지도자들의 몫이다. 탄핵을 지지한 쪽도, 반대한 쪽도 각자의 진영에 대해 자중과 자애를 호소해야 한다. 탄핵을 지지한 이들이 반대 진영에 대해 열패감을 안기는 언행을 하거나 탄핵을 반대했던 이들이 상대 진영에 대해 적의를 표출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이는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3개월 여 계속된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의 에너지가 응축돼 왔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11일에 예정된 집회는 정치 지도자들의 선도 능력을 확인하는 시험무대가 될 수 있다.

정치 지도자들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그들은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 국면을 돌파하고 더 나은 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구체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동안 온 나라가 탄핵 정국에 매몰돼 등한시 해 왔지만 대한민국은 지금 벼랑 끝의 위기에 몰려 있다.

밖으로는 중국과의 사드 갈등, 북한의 핵 위협, 일본과의 역사 및 독도 마찰, 미국으로부터의 통상압력 가능성 등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형국이다. 대내적으로도 급속한 고령화와 이로 인한 성장잠재력 둔화, 점증하는 가계부채, 누적된 부실기업 문제 등 손봐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정치 지도자들이 이런 난제들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고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시할 수 있어야 ‘대통령 탄핵’이라는 새 이정표가 그 의미를 인정받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대통령 탄핵은 조선시대의 사화처럼 한낱 정쟁의 결과로 그 역사적 의미가 추락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60일간 펼쳐질 대선 정국은 과거의 문제를 둘러싼 네거티브 싸움이 아닌, 더 나은 국가를 만들기 위한 경륜을 겨루는 경연장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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